เข้าสู่ระบบ사내는 잠시 예령을 노려보더니 허리춤에서 은전 주머니를 꺼내 좌판 위에 내려놓았다. 묵직한 소리에 상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말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하지. 하지만 오늘 당장 이만한 돈을 내놓을 사람은 우리뿐이오.”그가 주머니를 열자 은전이 반짝였다. 늙은 모피 장수는 침을 삼켰고, 뒤에 선 젊은 상인들은 저마다 눈치를 살폈다. 예령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긴 겨울을 버틴 사람들에게 당장 손에 쥘 돈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 있었다.“그 돈을 받으면 내년에도 같은 값을 받을 수 있습니까?”“내년 일은 내년에 걱정하면 되지 않소.”“그렇다면 오늘 높은 값을 주는 이유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다른 상단이 모피를 사지 못하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예령은 상인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모두 저와 거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물건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마십시오. 장터에 여러 손님이 있어야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좋은 말씀이오만, 우리 집에는 당장 먹을 쌀이 없소.”젊은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품에는 낡은 모피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예령은 잠시 생각하다 그에게 다가갔다.“그 두 장은 제가 사겠습니다. 나머지 물건은 다른 상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보내십시오. 팔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운송비는 제가 먼저 부담하지요.”젊은 상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들었다. 예령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제안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당장 팔 물건을 남겨 두고,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함께 모피를 보내자는 것이었다.“서씨 상단이 그렇게까지 하겠다고?”태성상단의 사내가 비웃었다.“남의 물건 팔아 주느라 제 돈을 잃겠다는 말이오?”“손해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일입니다.”예령의 대답에 뒤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손짓하자 동행한 자들이 길목으로 나서며 상인들의 짐수레 앞을 막았다.“좋소. 그럼 어디 한번 옮겨 보시오. 이 장터에서 누가 길을 열어
무겸은 식어 버린 국그릇을 살피더니 연화를 불렀다. 따뜻한 것을 다시 내오라는 말에 예령이 손을 저었다.“이대로도 괜찮습니다.”“괜찮다는 말을 오늘 몇 번이나 했는지 아시오?”뜻밖의 물음에 예령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의원에서도,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무겸은 더 추궁하지 않고 그녀 앞에 놓인 잔에 차를 따랐다.“놀라지 않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소. 나에게까지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되오.”예령은 잔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에 온기가 닿자 장터의 소란이 다시 떠올랐다. 쏟아진 은전과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자신을 밀쳐 내던 진서헌의 손. 조금만 늦었다면 그가 아닌 자신이 피를 흘렸을 것이다.“진 상단주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겁니다.”“알고 있소.”“그분께 큰 빚을 졌습니다.”무겸은 잠시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예령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다른 사내에게 빚을 졌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예령에게 내보일 감정이 아니었다.“빚이라고 여기지 마시오. 진 상단주도 부인이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대하는 건 바라지 않을 거요.”“장군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어찌 아십니까?”“나라도 그랬을 테니까.”짧은 대답이었다. 예령은 차를 마시려다 손을 멈췄다. 무겸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식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국이 오면 조금이라도 드시오. 빈속으로 밤을 지새우면 내일 장터에도 못 나갈 테니.”“내일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곽진에게 들었소. 상인들을 모으겠다 했다지.”“태성상단이 모피를 독차지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신 전부 사들일 형편도 아니고요.”“방법은 있소?”“서씨 상단의 거래처를 소개하려 합니다. 작은 상인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 굳이 태성상단이 부르는 값에 매달릴 이유가 없지요.”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장터를 지킬 병력을 보내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랐으나 삼켰다. 예령에게 필요한 것은 대신 결정을 내려 줄 사람이 아니라, 그
진서헌의 대답은 담담했다. 무겸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오늘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 하나만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의원 앞을 떠나려던 무겸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진서헌의 팔을 감싼 붕대가 소매 아래로 비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곡식값을 두고 맞서던 사내가 오늘은 예령을 대신해 칼을 맞았다.“상처가 아물 때까지 무리하지 마시오.”“의원도 큰 상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내 부인을 구하다 다친 상처요. 어찌 모른 척하겠소.”진서헌은 잠시 무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무겸의 말에는 빈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진서헌 역시 가벼운 농담으로 대꾸할 수 없었다.“부인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무겸은 그제야 말에 올랐다. 진서헌은 말발굽 소리가 멀어진 뒤에도 한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팔을 조금 움직이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자꾸 떠오르는 것은 칼날보다 자신을 붙들고 상처를 살피던 예령의 얼굴이었다.그날 저녁, 예령은 돌아온 뒤에도 쉬이 저녁상을 받지 못했다. 연화는 갈아입으려 벗어 놓은 옷에 피가 묻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 달려왔다.“마님, 어디 다치셨습니까?”“나는 다치지 않았다. 진 상단주가 나를 구하다 팔을 베였어.”연화는 안도의 숨을 내쉬다가도 핏자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령은 옷을 한쪽에 접어 놓았다. 진서헌이 제 몸을 돌려 칼을 막아선 순간을 떠올리니 지금도 손끝이 서늘했다. 평소에는 웃으며 거래를 흥정하던 사람이었다. 오늘만큼은 그 웃음 뒤에 감추어진 용기가 고마웠다. 장터에서 들었던 옷 찢어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때 진서헌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칼끝은 어디에 닿았을까.“장군님께서는 아십니까?”“의원까지 오셨다. 나보다 진 상단주에게 먼저 고맙다고 하시더구나.”말을 마친 예령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겸이 자신의 손목에 남은 작은 상처까지 알아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차 문을 열어 주었던 것도.
칼날이 옷깃을 찢고 지나가는 순간, 진서헌의 몸이 예령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그녀를 뒤로 밀어내면서도 끝내 팔을 거두지 않았다. 검은 두건의 사내가 다시 칼을 들어 올리자 장호가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달려들었다.“마님, 물러서십시오!”장호의 칼집이 사내의 손목을 내리쳤다. 짧은 칼이 돌바닥을 튀었고, 뒤따라온 호위 둘이 사내를 엎어 눌렀다. 장터의 비명은 그제야 한꺼번에 터졌다. 엎어진 좌판에서 은전이 굴러다녔지만 누구도 줍지 못했다.예령은 진서헌을 붙들었다. 짙은 남색 소매 아래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웃으려 하자 예령의 표정이 굳었다.“움직이지 마십시오. 상처부터 봐야 합니다.”“부인께서 다치지 않으셨으니 됐습니다.”“저를 구하시려다 다치셨는데 어찌 괜찮다고만 하십니까.”예령은 목에 둘렀던 얇은 비단을 풀어 그의 팔을 감쌌다. 피가 곧장 스며들었다. 진서헌은 잠시 예령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칼끝 앞에서도 태연하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상처가 깊지 않아야 할 텐데요.”“이 정도는 괜찮습니다.”“괜찮은지는 의원이 판단할 일입니다.”예령은 장호에게 가장 가까운 의원을 부르라 이르고, 붙잡힌 사내를 돌아보았다. 두건이 벗겨진 얼굴은 낯설었다. 사내는 땅바닥에 뺨을 붙인 채 중개인이 서 있던 자리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모피를 사들이던 자들은 소동을 틈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천막 아래에는 빈 저울과 뒤집힌 나무함만 남아 있었다. 물건을 사겠다며 그토록 요란하게 사람을 모아 놓고, 정작 한 꾸러미도 챙겨 가지 않은 것이다.예령은 붙잡힌 사내를 바라보다가 장호에게 물었다.“저자가 처음부터 저를 노린 것이 맞습니까?”장호가 이를 악물었다.“예, 마님. 분명 마님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제가 한발 늦었습니다.”“장호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선 사람부터 살펴 주십시오.”예령은 사내의 손에 묻은 먹물을 보았다. 검지 끝과 손톱 밑이 검었다. 칼을 쥐었던 자라기보다 종일 무언가를 적던 사람의 손이었다. 순간
관문이 다시 열린 뒤 사흘째 되는 아침이었다. 성안의 장터에는 겨우내 묶여 있던 수레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남쪽에서 가져온 비단과 차, 북방의 모피와 약재가 처마 아래 쌓였고, 상인들은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서로의 물건을 살폈다.예령은 상단 앞에 도착한 낯익은 마차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진가상회의 표식이 새겨진 문이 열리고 진서헌이 내려섰다. 그는 예령을 발견하자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태연히 웃었다.“부인께서 먼저 오셨군요. 저는 늦지 않으려 새벽부터 길을 나섰는데.”“예고도 없이 오신 분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아셨습니까?”“기다리시지 않을 걸 알기에 일찍 온 것입니다.”능청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가 펼쳐 보인 종이를 보고 예령은 웃음을 거두었다. 북방의 장터에 새로 들어선 상인들이 모피를 한꺼번에 사들이겠다고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값을 내걸었고, 사흘 안에 물건을 넘기는 상회에만 계약하겠다고 했다.“값을 잘 쳐 주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사들이겠다는 물건이 너무 많습니다. 이 고을 상회들이 겨우내 모아 둔 것보다도요.”예령은 종이를 다시 읽었다. 구매자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거래를 중개하는 곳에는 태성상단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 얼마 전 군량 장부 사건에서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황기문의 이름과 마주할 줄은 몰랐다.“진 상단주께서는 이 거래를 막으시려는 겁니까?”“아니요. 먼저 물건을 살피려 합니다. 부인께서도 보셔야 할 듯해서요.”“어째서 저입니까?”“부인께서는 값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거래에 나서실 분이 아니지요. 저 역시 이번 거래가 어딘지 석연치 않습니다.”예령은 종이를 접어 돌려주었다. 말만 듣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진서헌도 그 점을 아는지 더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마당 끝에 세워 둔 마차를 가리켰다.“오늘 정오에 첫 물건을 공개합니다. 보시고도 시시하면 그대로 돌아오십시오.”그가 돌아가려는 순간 곽진이 말을 몰고 들어왔다. 뒤이어 무겸이 내렸다. 군영에서 돌아오는 길
군영을 떠난 마차가 성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도 예령은 한동안 창을 닫지 않았다. 눈발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횃불 아래 서 있던 무겸의 모습이 눈앞에 남아 있었다. 연화가 추위에 감기라도 들겠다며 몇 번이나 청하고 나서야 예령은 창을 내렸다.이튿날 새벽에는 밤새 내리던 눈이 멎었다. 마당에 찍힌 발자국이 희미한 푸른빛을 띠었고, 처마 밑에서는 얼음 녹는 물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예령이 아침상을 물린 참에 연화가 작은 나무함과 서신 한 통을 가져왔다.“마님, 군영에서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장군님께서 전하라 하셨답니다.”함 안에는 매화 무늬가 새겨진 은제 손난로가 들어 있었다. 가장자리가 닳고 뚜껑에는 작은 흠집이 있는, 새 물건은 아니었다. 함께 온 서신에는 밤사이 북쪽 초소를 살필 일이 생겨 이틀쯤 군영에 머물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끝에는 추운 날 먼 길을 다니지 말고 손을 따뜻이 하라는 짧은 당부가 붙어 있었다.예령은 서신을 접고 손난로를 들어 보았다. 어젯밤 자신에게 겉옷을 둘러 주던 사람이 떠올랐다. 새 물건을 구할 겨를도 없이 평소 쓰던 것을 보냈을 터였다.“장군께서는 손이 시리지 않으시다더냐?”“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군영에 심부름 가는 사람이 있으면 숯과 두툼한 장갑을 함께 보내라. 이 손난로도 돌려드릴까 했는데, 그러면 괜한 마음을 쓰신 셈이 되겠구나.”연화는 웃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예령은 함을 덮은 뒤 서신을 다시 펼쳤다. 낯선 불빛을 보았다는 전갈이 그리 위중한 일은 아니기를 바랐다. 무겸은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초소에 관한 일만큼은 직접 확인하고야 마는 사람이었다.아침이 밝자 예령은 상단으로 향했다. 관문이 열린 뒤 들어온 수레가 창고 앞에 서 있었고, 일꾼들은 평소의 속도로 곡식을 날랐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며칠이 먼일처럼 느껴질 만큼 마당은 평온했다. 예령은 그때 짐을 졌던 이들의 품삯이 빠짐없이 지급되었는지 살피고, 손을 다친 일꾼에게 며칠 더 쉬도록 했다.점심이 지나자 상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