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아침 공기는 전날보다 조금 더 맑았다.도진은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했다.눈을 뜬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으나이상하게도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다.마치 오래된 상처가 아직 아물지는 않았지만더 이상 피를 흘리지는 않는 상태처럼.도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일어났다.오늘은 이수와 약속이 없었다.그 사실이 어제까지는 묘한 허전함으로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기다림.그리고 그 기다림이 반드시 불안만을 의미
도진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옷을 갈아입고, 불을 끄고, 늘 하던 순서대로 하루를 접었지만몸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이수와 나눈 말들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창밖에서는 간헐적으로 자동차 소리가 지나갔다.그 소리는 도시가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낮고 길게 남았다.도진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잃어버린 게 아니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이수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그 문장은 설명이라기보다 어딘가에 닿지 못한 구조 신호처럼 느껴졌다.그는 자신이 왜 그 말에 반응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다만 그 말이 가슴 깊은 곳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렸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도진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심장은 낮보다 조금 느리게 뛰고 있었지만, 그 박동은 여전히 또렷했다.그의 몸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무엇을.’그 질문에 답은 없었다.그는 주방으로 향해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잠시 생각을 가라앉혔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도진은 자신도 모르게 서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곳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천년의 기억』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그는 책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읽으면 안 될 것 같았다.아니,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그 대신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도시는 빛으로 가득했지만, 하늘은 생각보다 어두웠다.그 어둠을 바라보는 순간, 도진의 머릿속에 짧은 이미지 하나가 스쳤다.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차가운 선.칼날처럼 느껴졌지만, 형체는 분명하지 않았다.“……”도진은 숨을 멈춘 채 그 감각을 붙잡으려 했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피곤한가.”그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그러나 그건 단순한 피로의 문제는 아니었다.다음 날 아침, 도진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섰다.출근길의 도시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그러나
저녁은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도진은 회사 건물을 나서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해는 이미 완전히 저물었고, 도시는 낮과는 다른 얼굴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차에 오르기 전, 그는 잠깐 망설였다.이수에게 향하는 발걸음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위험하다는 감각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망설임은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약속 장소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조용한 골목 안쪽, 낮은 조명과 차분한 음악이 흐르는 작은 바.이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바 테이블 끝에 앉아 잔을 앞에 두고 있었고, 그의 발소리를 느낀 순간 고개를 들었다.“오셨어요.”그 말투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함이 섞여 있었다.“기다리셨습니까?”도진이 물었다.“조금요.”이수가 웃으며 답했다.“그런데… 기다리는 게 싫지는 않았어요.”도진은 그 말의 의미를 굳이 캐묻지 않았다.대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잔이 채워지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이번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서로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이었다.“어제는…”이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조금 급하게 헤어졌죠.”“그랬네요.”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그녀는 잔을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그런데… 그럴수록 제가 너무 많은 걸 드러낼 것 같아서.”“드러내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도진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요.”이수는 그 말에 잠시 시선을 멈췄다.“도진 씨는…”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나요?”그 질문은 가벼운 호기심이 아니었다.도진은 그 무게를 느꼈다.“…확신할 수는 없습니다.”그가 솔직하게 답했다.“하지만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그 대답은 과하지 않았고, 그러나 충분히 진지했다.이수는 그를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아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도진은 알람이 울리기 전,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천장은 여전히 높았고,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색을 띠고 있었지만그의 몸은 이미 이전의 리듬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그는 한동안 아무 움직임 없이 누워 있었다.심장은 밤새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잠깐의 정적 끝에 도진은 몸을 일으켰다.샤워를 하고, 말끔하게 셔츠를 입고, 타이를 매는 동안에도 손놀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러나 그 모든 ‘정돈된 동작’ 뒤편에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의 질문을 되뇌고 있었다.‘왜 지금이었을까.’수백 번 반복해 온 일상 속에서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이토록 균형이 흔들린 이유.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도진은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이상하군.”그 말은 불만도, 두려움도 아니었다.오히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확신에 가까웠다.출근길의 도시는 어제와 같았다.신호에 멈춘 차들,정류장에 선 사람들,커피를 들고 빠르게 걷는 발걸음들.그러나 도진의 시선은그 풍경을 어딘가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이 도시가 자신이 오래 머물러온 공간이지만 완전히 속한 곳은 아니라는 이상한 감각처럼.회사에 도착하자 비서가 곧장 다가왔다.“대표님, 오늘 일정 중에 오후 미팅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어디서?”“출판사 쪽입니다.”도진은 잠깐 숨을 멈췄다.“…알겠습니다.”그 대답은 의식적으로 평온했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작은 파문이 일었다.회의, 보고, 결재. 평소라면 기계처럼 처리했을 일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한 박자씩 늦어졌다.집중하지 못한 탓이 아니었다.오히려 집중의 방향이 바뀌어버린 느낌이었다.그는 문득 자신이 언제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는지 떠올려 보았다.정확한 시점을 짚어낼 수 없었다.다만 확실한 것은, 이수라는 이름을 듣기 전과 후의 자신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었다.점심시간, 도진은 혼자 사무실을 나섰다.사
밤은 도시 위에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불빛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이유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그러나 도진의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집 안은 조용했다.높은 천장과 넓은 거실,의도적으로 채워 넣지 않은 공간들.그곳은 언제나 그가 스스로 선택한 고요였고, 그 고요 덕분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적어도 오늘 전까지는.도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재킷은 벗어 의자에 걸어 두었고, 셔츠의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평소라면 그 정도 흐트러짐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오늘은 그 사실조차 뒤늦게 알아차렸다.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그는 몇 번이나 다시 손을 뻗어 확인했다.연락이 올 이유는 없었다.약속도, 남겨야 할 말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그런데도 가슴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도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자,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수많은 불빛들. 그 아래를 오가는 사람들.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기억을 안고 지금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사람들.그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도진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한 얼굴이 떠올랐다.이수.그녀의 말투.숨을 고르는 방식. 말을 멈출 때마다 눈동자에 스치던 아주 미묘한 망설임.‘기억에 가까워요.’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울렸다.기억이라는 단어는 도진에게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울림을 남겼다.그는 의식적으로 그 단어를 밀어내려 했다.이유 없는 통증, 설명할 수 없는 끌림.그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도진은 다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또렷했다. 눈을 뜨면 사라질 줄 알았던 형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가슴이 다시 아려왔다.이번에는 아침보다도,레스토랑에서보다도 더 분명한 통증이었다.도진은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빠르게 느껴졌다.“하아…”짧은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밀려오는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아직은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였다.그의 삶은 이미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그 중심에는 이수라는 이름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그리고 이 밤이 지나면, 그는 더 이상 이 감정을 외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밤은 도시 위에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불빛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이유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그러나 도진의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집 안은 조용했다.높은 천장과 넓은 거실,의도적으로 채워 넣지 않은 공간들.그곳은 언제나 그가 스스로 선택한 고요였고, 그 고요 덕분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적어도 오늘 전까지는.도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재킷은 벗어 의자에 걸어 두었고, 셔츠의 단추 하나가 풀려 있었다.평소라면 그 정도 흐트러짐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오늘은 그 사실조차 뒤늦게 알아차렸다.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그는 몇 번이나 다시 손을 뻗어 확인했다.연락이 올 이유는 없었다.약속도, 남겨야 할 말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그런데도 가슴 어딘가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도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히자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수많은 불빛들. 그 아래를 오가는 사람들.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기억을 안고 지금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사람들.그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도진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한 얼굴이 떠올랐다.이수.그녀의 말투.숨을 고르는 방식. 말을 멈출 때마다 눈동자에 스치던 아주 미묘한 망설임.‘기억에 가까워요.’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울렸다.기억이라는 단어는 도진에게 이상할 정도로 무거운 울림을 남겼다.그는 의식적으로 그 단어를 밀어내려 했다.이유 없는 통증, 설명할 수 없는 끌림.그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도진은 다시
그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가늘게 떨리는 결이 있었다.그 떨림은 이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도진 역시 자신 안에서 무언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감정의 이름을 알기에는 이 날은 너무 이르고, 운명은 아직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둘의 발걸음이 나란히 복도를 따라 이어질 때비 온 뒤의 햇빛이 천천히 두 사람의 그림자를 하나의 긴 선처럼 이어 붙였다.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았으나, 동시에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전각 앞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낮빛
아침 햇살이 기와 위를 얇게 훑으며 지나갔다.비가 그치고 얼마 되지 않은 궁의 공기는 습기와 햇빛이 뒤섞여 묘한 온기를 띠고 있었다.이수는 도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걷고 있었다.비단 치마가 발목에 스치는 소리가 궁의 긴 복도에 조용히 흩어졌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종종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이 낯선 인생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느껴졌다.도진은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돌바닥 위에 닿는 그의 발걸음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했다.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은 그가 평생 검을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기압
아직 한 마디도 들은 적 없는 사람.이름조차 모르는 남자.하지만 왜인지 모르겠는 떨림이 그의 모습과 함께 가슴 위로 올라왔다.‘저 사람…’그녀는 이유 없이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다른 무사들과는 달랐다.기세라기보다, 결이 있었다.그 결은 단단하고 곧았지만 어딘가에 오래된 상처를 품은 듯한 분위기였다.한편, 세자의 곁에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그는 정확히 서 있었다.세자 현. 오늘 그녀가 첫 인사를 올려야 할 사람.혼례를 올릴 예비 남편이자, 나라의 중심이 되어갈 사람.그러나 지금
도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소문은 이미 들었지만, 직접 그의 입에서 들으니 사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세자가 혼례를 치르는 문제는 나라 전체의 일이며 궁 전체가 흔들리는 날이었다.“좌상댁의 영애라 하더군.”이현이 덧붙였다.“예, 저하.”도진은 짧게 대답했다.그 이상의 말을 할 권리는 그에게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전각의 문 밖에서작은 물방울 하나가 지붕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촛불이 그 작은 소리에 반응하듯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리고, 그 흔들림과 동시에 도진의 머릿속 어딘가가이유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