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지안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제안에 율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살폈다.
“이열~ 천 지안 뭐야!! 며칠 사이에 여자 기분도 생각할 줄 아는 스윗남이 다 되셨네?”
“있잖아, 율아. 넌 진짜 그 입이 문제야.”
“내 입이 왜? 내 입술이 상당히 치명적이야?”
“… 됐고, 초롬이랑 보롬이도 우리 집으로 오라 해.”
지안의 뺨에 붉게 그어진 생채기를 발견한 율이 짓궂게 물었다.
“그런데 네 얼굴은 왜 이러냐? 설마~ 유하나한테 맞았냐?”
“… 시끄러워.”
“천하의 천 지안 얼굴에 상처를 입히다니… 유 하나 대범하긴 하다.”
“… 지랄~”
“볼일은 지금부터 만들면 되죠. 그쪽 눈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바에 앉은 여자의 당돌한 한마디에 준휘는 실소했다.평소 같으면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떴을 텐데, 지독한 공허함 탓이었을까, 독한 위스키 탓이었을까.준휘는 제 잔을 부딪쳐 온 여자를 가만히 응시했다.“처음 보는 남자한테 잔을 들이밀기엔, 멘트가 지나치게 클래식하군.”준휘의 차가운 반응에도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오히려 새로 나온 위스키를 느릿하게 음미하며 생긋 웃을 뿐이었다.“클래식한 게 가장 직관적인 법이니까요. 그쪽, 오늘 큰일 하나 끝내고 허탈해서 온 사람 같아 보여서.”“…”“축하는 해줄게요. 비록 혼자 마시고 있었지만.”상대의 날카로운 통찰에 준휘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이 여자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준휘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사람을 꿰뚫어 보는 감각이 보통이 아니었다.준휘가 잔을 내려놓으며 여자의 옆모습을 눈에 담았다.“이름도 모르는 여자한테 축하받을 만큼 한가하진 않은데.”“그럼 이름부터 알면 되겠네.”여자가 준휘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리며 하얀 손을 내밀었다.“백도희예요. 그쪽은?”그녀의 당돌하면서도 오만한 눈빛이 준휘의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을 자극했다.준휘는 잠시 그녀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픽 웃으며 그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천준휘.”
사적인 정산.그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강륜은 침대 헤드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르게 세웠다.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적들 앞에서 웅크리고 싶지는 않았다.강륜이 차가운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천지안이 묻히지 못하는 손때를 대신 묻히러 왔군.”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시우가 픽 웃었다.“말은 바로 해야지. 지안이가 시킨 게 아니라, 우리가 거슬려서 온 거야.”시우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담배 케이스를 툭툭 두드렸다.“법대로 재판받고 징역 몇 년 살다 나오면 끝일 줄 알았나 본데. 공권력이 널 보호해 주니까 안전해 보여?”“…”“천준휘 씨가 서류로 네 숨통을 끊어놓는 건 그 양반 방식이고. 우린 우리 방식이 있어서 말이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이가 강륜의 침대 앞으로 슥 다가섰다.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석이는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얼굴로 손을 뻗어 강륜의 환자복 깃을 꽉 움켜쥐었다.거칠게 몸이 끌려 올라갔지만, 강륜은 이를 악문 채 신음을 삼켰다.석이가 강륜을 내려다보며 낮게 읊조렸다.“별이한테 수면제 먹였다며.”“…”“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그 서늘한 물음을 끝으로 암막 커튼이 쳐진 병실의 불이 툭 꺼졌다.사방이 차단된 고요 속에서 몇 차례 둔탁한 소음이 위태롭게 흩어졌다.방음이 철
달칵.정적을 깨고 병실 문이 열렸다.문성그룹 본가에서 붙여놓은 감시 인력이라도 들어온 줄 알았던 강륜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어차피 이제 와서 제 상태를 살피러 올 인간 따위는 없었다.하지만 병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발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묵직했고, 심지어 두 명이었다.공기의 흐름이 기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낀 강륜이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륜의 미간이 좁아졌다.문가에 서 있는 두 남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들이었다.큰 체구에서 풍기는 위압감으로 병실 입구를 가로막고 선 석이, 그리고 그 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는 시우.두 사람의 시선이 침대 헤드에 무력하게 기대어 있는 강륜에게 꽂렸다.“누구십니까.”강륜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건조하게 물었다.본가의 인간들이 보낸 해결사라기엔 두 사람의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지나치게 고급스러웠다.시우가 픽 웃으며 침대 발치로 다가왔다.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강륜의 환자복을 느릿하게 훑었다.“생각보다 사지가 멀쩡하네. 천준휘 씨가 얌전하게 배달만 해주고 가셨나 봐.”천준휘의 이름이 나오자 강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천지그룹 쪽 인간들이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었다.강륜이 차가운 눈으로 시우를 응시했다.“천지안이 보냈나.”“아니.”시우가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당겨 비스듬히 앉으며 대꾸했다.“지안이는 지금 별이랑 아
파티가 무르익고 밤이 깊어갈 때쯤, 거실의 활기찬 소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별이의 무릎 위에서 까르르 웃던 초롬의 딸 초해는 어느새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해달이 그런 초해를 다정하게 안아 들었다.별이와 보롬이 남은 뒷정리를 하러 주방으로 향하는 사이, 해달은 품 안에서 곤히 잠든 초해를 데리고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갔다.침대에 초해를 눕히고 이불을 깃 아래까지 조심스럽게 덮어준 해달이 살그머니 문을 닫고 주방으로 합류했다.아이를 방에 눕히고 여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그 순간.거실 테이블에 남은 것은 초롬, 율, 시우, 석이 형, 그리고 지안과 신호까지 오직 남자들뿐이었다.술잔을 만지작거리던 지안의 눈동자가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낮 동안 별이 앞에서는 철저히 감추었던 어젯밤의 진실을 꺼낼 차례였다.지안이 먼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문강륜이 움직였었어. 어젯밤에.”그 한마디에 흩어져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지안에게로 꽂혔다.율이 잔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고, 묵묵히 듣고 있던 석이 형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지안은 담담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로 문강륜이 별이에게 수면제를 먹여 납치하려 했던 전말을 털어놓았다.준휘 형이 이미 문성그룹의 목줄을 쥐고 법적 매장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는 말까지 끝마치자, 거실 안에는 서슬 퍼런 침묵이 감돌았다.“…미친 새끼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네.”초롬이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제 동생의 경사로 가득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차가운 살기로 물들었다.율 역시 주방 쪽을 슬쩍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지만,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nb
– 야!!! 한별!!! 대박!!! 나 어떡해!!!“보롬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별이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옆에 있던 지안의 미간도 살짝 좁아졌다.수화기 너머로 보롬이가 꺽꺽거리며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나 드디어 임신했나 봐! 방금 테스트기 확인했는데 완전 선명하게 두 줄 나왔어!!!“뭐, 뭐?! 진짜 두 줄이야?!”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율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지 제법 되었지만 워낙 아기가 안 생겨 은근히 속앓이를 해왔던 보롬이었다.– 어떡해, 나 너무 좋아서 눈물 나, 진짜…! 아, 율 오빠 알면 좋아서 뒤집어질 텐데 아직 말도 못 했어! 야, 한별!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만나서 이 기쁨을 나눠야 해!감격에 겨워 횡설수설하는 보롬이의 목소리에 별이마저 눈시울이 붉어지며 어버버하는 사이, 지안이 슥 손을 뻗어 별이의 휴대전화를 가져갔다.지안에게는 절친 율의 아내이자, 또 다른 절친 초롬이의 이복동생인 보롬 역시 제 식구나 다름없었다.“강보롬.”– 어? 지, 지안 오빠?!전화기 너머 보롬이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지안은 제 품에 안긴 별이를 빤히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린 채 나직하게 말했다.“축하해. 율이 녀석 드디어 아빠 되네. 근데 우리 별이는 어제 와인에 절여져서 오늘 나랑 꼼짝 말고 누워 있어야 하니까, 자랑은 율이한테 먼저 해.”– 헉, 와인? 대박…! 미안 미안, 내가 눈치가 없었다! 지안 오빠 축하 고마워요
입술이 맞닿은 틈 사이로 은밀한 숨소리가 흩어졌다.지안의 거친 호흡이 별이의 숨결을 집요하게 집어삼켰다.6년의 갈증을 한 번에 터트려내듯 깊고 짙은 키스였다.별이는 지안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냈다.눈앞의 지안은 지독하게 절박해 보였다.“별아… 한별.”입술이 떨어졌을 때, 지안이 붉어진 눈으로 별이를 내려다보았다.지안의 시선이 문강륜의 손길이 닿아 풀려 있던 단추 세 개에 머물렀다.강륜의 흔적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안의 안을 잔인하게 헤집었다.지안은 그 불쾌한 잔상을 제 손으로 전부 씻어내려는 듯, 별이의 셔츠를 거칠게 밀어내며 피부 위로 입술을 묻었다.“선배…”별이가 가느다란 신음을 뱉으며 지안의 머리칼을 거머쥐었다.지안의 입술은 쇄골과 목덜미를 따라 집요하게 붉은 자국을 새기듯 내려갔다.오직 제 체취와 온기로만 별이의 온몸을 덮어버리겠다는 독점욕이었다.닿는 피부마다 뜨거운 전율이 일어났다.지안의 셔츠 단추가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다.서로의 맨살이 빈틈없이 맞닿았다.“…하.”참지 못한 거친 호흡이 얽혀들었다.문강륜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내고 제 것으로 가득 채우는 지안의 손길 속에서, 두 사람만의 뜨거운 밤이 깊어갔다.다음 날 아침.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지안이 먼저 눈을 떴다.제 품에 파묻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별이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어젯밤의 흔적이 남은 별이의 어깨 위로 이불을 조심스럽게 덮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