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송지아는 허리를 숙여 세세를 품에 안았다.“네 아빠는 어디 있어?”“야옹.”설마 아직 육씨 집안에 있는 걸까?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뒤로 허경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먼저 알려 주곤 했다. 오늘도 육씨 집안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집에 돌아왔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송지아는 일부러 찾아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깜짝 방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하랑이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허경빈이 이곳을 신혼집처럼 꾸며 놓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경호원에게 들었다. 직접 와서 보니 과장이 아니었다.장식품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찻잔까지 모든 물건이 다정하게 한 쌍씩 놓여 있었다. 집 안 곳곳에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날을 기다리는 듯한 흔적이 묻어났다.그 모습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안방 앞에 도착해 있었다.닫힌 문 아래의 가느다란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송지아는 의아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집에 있었던 건가?그렇다면 왜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똑똑.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송씨 집안에는 나이 든 어른이 많았다. 평소 집안 어른들의 건강을 염려하던 습관 탓인지, 송지아의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혹시 집 안에서 쓰러진 건 아닐까?송지아는 문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런데 마침 안쪽에서도 누군가 문을 열었다. 손잡이를 쥔 채 갑작스럽게 앞으로 끌려간 그녀는 중심을 잃고 방 안으로 휘청거렸다.“어…!”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가 싶더니, 마주 나오던 사람의 품에 정면으로 부딪쳤다.허경빈은 샤워하던 중 바깥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급히 물을 끄고 나왔다. 몸을 대충 헹군 뒤 가운만 걸친 상태였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제 품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다.느슨하게 여며진 가운 사이로 가슴께의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공교롭게도 송지아의 얼굴은 정확히 그곳에 닿
허경빈이 라비엘 레지던스로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송지아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송씨 집안은 이제 막 경성에 돌아와 사업 기반을 넓혀 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송지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두 사람은 그동안 겨우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허경빈은 이따금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별일도 없으면서 괜히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친구들은 이유를 훤히 알고 있었다.송씨 집안의 공주님에게 외면당해 외로운 게 분명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주헌이 단체 채팅방 이름을 바꿨다.[오늘 경빈이는 간택받았나?]화가 난 허경빈은 당장이라도 방주헌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는 곧바로 반격했다.[희진이는 오늘도 야근하나?]방주헌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여성의 날이 다가오면서 보석을 구매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 강희진은 열흘 중 아홉 날을 야근할 만큼 바빴다.그녀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연애보다 돈 버는 게 더 즐거워요.”자신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다고 생각한 방주헌은 혼자 삐쳐 강희진에게 냉전을 걸었다.친구들 앞에서는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선언하기도 했다.강희진이 먼저 달래 주러 오지 않는 이상 자신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고.그러나 강희진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어느 사설 요릿집의 게살 새우 요리가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방주헌은 언제 삐쳤냐는 듯 쪼르르 달려가 음식을 사다 그녀 앞에 바쳤다.그 모습을 본 육강민 일행은 배를 잡고 웃었다.그 뒤로 친구들은 틈만 나면 그 일을 꺼내 방주헌을 놀려 댔다.*그날은 주말이었다.허경빈은 본가에 들러 부모님과 식사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육씨 집안으로 놀러 갔다.얼마 후면 육씨 집안의 어른 박명숙이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다. 가족들은 어떻게 잔치를 열어 드릴지 한창 상의 중이었다.정작 박명숙은 괜한 낭비라며 크게 치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육진국 부부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허경빈이 도착했을 때, 육수린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경극
허경빈은 부모님이 송지아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눈에는 이제 친아들인 자신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문득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말 하나가 떠올랐다.아내가 생기면 어머니를 잊는다.하지만 지금 상황에는 조금 고쳐 쓰는 편이 더 어울릴 듯했다.며느리가 생기면 아들을 잊는다.결정타를 날린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지아 씨, 앞으로 경빈이가 괴롭히면 꼭 나한테 말해요. 우리가 젊었을 때 너무 바빠서 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도, 가르치지도 못했거든요. 게다가 어릴 때 모유도 못 먹고 분유만 먹고 자라서 나는 늘 그게 미안했어요…”허경빈은 순간 멍하니 굳었다.분유 이야기를 들으니 오래전 부모님이 자신의 인성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했던 일이 떠올랐다.어릴 적 송지아를 괴롭힌 일로 교사가 부모님을 학교에 호출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여자아이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무척 창피해하며 어머니에게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여자애를 괴롭히는 이런 못된 녀석을 낳았지? 여보, 혹시 경빈이가 어릴 때 질 나쁜 분유를 먹어서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것 아닐까?”그날 이후 허경빈은 ‘분유’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으로 그 일이 떠올랐다.송지아는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허경빈의 어머니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식사가 끝나자 허경빈은 설거지를 하라는 명령과 함께 주방으로 쫓겨났다. 집에는 멀쩡한 식기세척기가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손으로 씻어야 깨끗하다며 한사코 아들에게 맡겼다.허진강도 아들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지아가 여기 있는 줄 알았다면 네 어머니와 나는 오지 않았을 거야. 우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그런지 꽤 불편해 보이더구나.”“우리 사이가 워낙 좋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두 분 때문에 진작 도망갔을걸요.”허진강이 코웃음을 쳤다.“그래, 계속 허풍 떨어 봐라.”그러다 거실 쪽을 슬쩍 바라보며 감탄하듯 중얼거렸다.“우리 집 돼지가 드디어 저렇게 예쁜 배추를 물어 올 줄은 몰랐군. 지아는 참 괜찮은 아가씨야. 어릴
숨 막히는 침묵은 배달 봉투를 든 배달원이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졌다.송지아는 조금 전 식탁에서 내려온 탓에 아직 맨발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허경빈의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경빈아, 지아 신발부터 신겨 줘. 날이 풀렸다고 해도 바닥에는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여자는 몸을 차게 하면 안 돼.”허경빈은 곧바로 허리를 숙여 그녀의 신발을 집어 들었다.송지아는 그의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신발까지 신겨 주게 할 수는 없어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일어나. 신발은 내가 신을 수 있어.”“괜찮아요. 경빈이한테 신겨 달라고 해요.”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결국 허경빈은 송지아에게 직접 신발을 신겨 주었다.현관문이 닫힌 뒤에야 송지아는 허진강 부부가 계속 자신을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작스럽게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마주한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두 사람의 시선까지 느껴지자 온몸에 절로 긴장이 들어갔다.허경빈의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너희 배달 음식 시켰니? 분명 네가 직접 요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만든 음식은 어디 있는데?”허경빈은 말없이 고양이 밥그릇을 가리켰다.허진강은 그 안에 담긴 정체불명의 음식을 힐끗 내려다보았다.“이게 네가 만든 거야?”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들을 바라보았다.“대체 누굴 독살하려고?”잠시 뒤 허진강은 아내와 눈을 마주친 뒤 헛기침했다.“우리 부부가 아무래도 때를 잘못 맞춰 온 것 같군.”송지아가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허경빈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아셨으면 됐어요.”“그럼 우리가 갈까?”“제가 배웅해 드릴게요.”송지아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두 사람이 정말 이렇게 돌아간다면 자신을 대체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겠는가.“아버님, 어머님, 경빈이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두 분은 저녁 드셨어요? 아직 안 드셨으면 같이 먹어요.”허경빈의 어머니는 괜찮다며 사양했다.“우리는 됐어요.”그러나 허진강은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대
송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물었다.“요리도 할 줄 모르면서 왜 갑자기 배우려는 거야?”“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한다잖아.”송지아는 피식 웃었다.“그럼 일단 나부터 내려 줘.”“싫어.”허경빈은 뻔뻔하게 버텼다. 이렇게 작정하고 막무가내로 나오면 송지아로서도 그를 당해 낼 방법이 없었다.그녀는 대리석의 차가운 기운을 피해 엉덩이를 조금 움직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차가워.”“어디가 차가운데?”허경빈이 짓궂게 되물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거리가 좁혀지자 서로의 체온과 향이 한데 뒤섞이는 듯했다. 흐트러진 그의 숨결이 송지아의 얼굴 위로 뜨겁게 쏟아졌다.거칠고, 다급하고, 열에 들뜬 숨이었다.송지아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허경빈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숨을 빼앗듯 깊이 입 맞춘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밀착했다. 이제 입맞춤에 제법 익숙해진 허경빈은 망설임이 없었다. 뜨거운 입술이 끈질기게 얽혀 들며 키스는 점차 깊어졌다.입술에서 시작된 열기가 서서히 온몸으로 번졌다. 차가운 식탁 위에 앉아 있는데도 송지아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간신히 입술을 뗀 송지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이제 내려 줘. 식탁 위에 앉아 있으니 불편해.”“안 돼.”“계속 이러면 물어 버릴 거야.”“물어.”허경빈은 오히려 입술을 가까이 내밀었다.“마음껏 물라고 이렇게 찾아왔잖아.”말을 마친 그가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정말 낯짝도 두꺼운 사람이었다!달콤한 숨결이 어지럽게 뒤엉키자 머리끝까지 저릿한 감각이 번졌다. 송지아는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점점 힘이 빠졌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의 품 안에서 축 늘어지자,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허경빈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정신마저 아득해지던 그때, 뜨거운 손 하나가 그녀의 옷자락 안으로 파고들었다.허경빈의 손은 거칠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유난히 뜨거웠다. 그 열기가 부드러운 피부 위를 스쳐 지나가자 송지아의 입술 사이로 자신도 모르
설도윤의 어머니는 모든 책임을 송지아에게 돌리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쉴 새 없이 퍼부었다.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던 설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가려 했다.“조경 씨, 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려고요?”설조경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대답했다.“회사에 가.”“우리 회사에 문제가 생긴 건 분명 송씨 집안 때문이에요. 그 계집애, 겉으로는 교양 있고 점잖아 보이더니 이렇게 음흉하고 악독한 줄 누가 알았겠어요…”“입 다물어!”설조경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누가 멋대로 송지아를 찾아가라고 했어? 설령 송씨 집안이 우리 회사를 건드린 거라고 해도, 원인을 만든 사람은 당신이야.”“하나뿐인 아들이 잡혀갔는데 당신은 구해 낼 능력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빌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나를 탓해요?”부부의 말다툼은 갈수록 격해지더니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졌다.설도윤의 어머니는 조금 전 진이화에게 뺨을 두 차례나 맞은 데 이어 남편에게 떠밀려 바닥에 넘어졌다.그녀는 자신을 내버려 두고 성큼성큼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분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곧이어 손에 잡히는 대로 거실의 장식품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쨍그랑!값비싼 장식품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가사도우미들은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감히 입도 열지 못했다.“송지아, 네가 감히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설도윤의 어머니는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몇 년 전 자궁근종으로 자궁을 적출했다. 그렇기에 평생 얻은 자식은 설도윤 하나뿐이었다.하나뿐인 아들이 감옥에 가는 모습을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만약 송지아의 약점을 찾아 그것으로 협박할 수만 있다면, 아들을 구해 내는 것은 물론 위기에 빠진 회사까지 살릴 수 있을 터였다.그때가 되면 아들도 집으로 돌아오고, 틀어진 남편과의 관계도 다시 예전처럼 회복될 것이다.그녀의 눈에 어두운 집념이 서렸다.*같은 시각, 허경빈의 아파트.송지아는 그의 컴퓨터를 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