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부족한 것 없는 남자, 차도언. 그가 처음으로 욕망한 건 단 하나였다. 한이재. 호명가의 입주 과외 선생인 그녀는 그와 엮이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시작된 관계. 가벼운 장난처럼 다가온 그는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한다. 개새끼가 될지언정 그녀를 갖고 싶다. 싫어하면서도 밀어내지 못하는 여자와, 놓을 생각이 없는 남자. 처음에는 잠깐 스쳐 지나갈 감정이라 믿었다. 곧 그칠 비처럼, 언젠가 녹아버릴 눈처럼. 한 번도 욕망해 본 적 없는 남자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더 깊이 빠져들었고, 끝내 믿지 못한 여자는 그를 밀어냈다. 그러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놓을 수 없는 쪽도, 떠날 수 없는 쪽도 서로가 되어버린 뒤라는 것을.
View More이재에게 안서희를 마주하는 것은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도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호명 가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었다.그러니 안서희가 불편하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이재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정말 혼자서 괜찮겠어?”도언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마음 불편하게 피하는 것보다 나아요.”“그래,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언이 마지못해 수긍했다.그러면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씩씩하게 구는 이 여자가 자신이 없을 때 혹시나 상처받지는 않을까.혼자서 울게 되지는 않을까 마음이 아려왔다.이미 받은 상처로도 충분히 차고 넘칠 텐데 행여나 그 상처가 덧날까 걱정 되었다.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기에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도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이재는 저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헤실거릴 뿐이었다.“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아무 일도 안 생겨요! 걱정하지 말고 얼른 출근해요!”이재가 제 허리에 두른 그의 손을 풀어내고는 그를 떠밀었다.“나도 일찍 끝내고 올게.”“괜히 기대하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첫날인데 바쁠 거 다 알아요.”도언은 웃어버리고 말았다.이재의 말이 맞을 것이다.일찍 오겠다는 말은 출근과 동시에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차 회장의 부재로 쌓인 것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것이 뻔했다.괜한 말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지도
갑작스러운 안서희의 등장이었다.깜짝 놀란 이재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말고 멈칫 서버렸다.도언이 그런 이재를 제 뒤로 숨기고 안서희 앞으로 나섰다.“여긴 무슨 일이세요?”반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낸 도언이 목소리에 날이 섰다.억지로 웃고 있는 안서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니? 오랜만에 도언이 너도 왔고 그리고…….”안서희의 시선이 도언의 뒤에 있는 이재에게 닿았다.“한 선생도 왔는데 내가 챙겨야지. 어머 나 좀 봐. 이제 한 선생이라도 하면 안 되려나? 호호호……!”안서희가 카랑진 웃음소리가 느닷없이 별채에 울렸다.옆에 서 있던 김 여사도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안서희를 힐끗 바라보았다.“저녁 먹으려던 참이니?”안서희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다이닝 룸을 새삼스레 훑어보았다.“좀 일찍 와볼걸 그랬네. 오늘은 내가 늦은 것 같으니 내일은 안채에서 같이 저녁 하자.”김 여사는 혹시나 도언이 안서희에게 별채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청할까 싶어 주방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오랜 고용인 생활에서 나온 예측이었다.그러나.“아뇨.”도언이 안서희의 말을 단박에 잘랐다.“내일은 회사에 일이 있습니다.”“그, 그래?”단호한 도언 앞에서 안서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민망함을 감추려 애썼다.“도언이가 바쁘면 한 선생이라도…… 아니, 한 선생이 아니지.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설핏 잠들었던 이재는 눈을 떴다.도언은 잠들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깊이 곯아떨어져 있었다.이재는 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른 숨소리를 내는 도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그녀의 손길을 느낀 듯 도언이 습관적으로 이재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가슴 사이에 코를 박은 도언은 부드럽게 뭉개지는 가슴에 완전히 안긴 채였다.“어머, 뭐야......?”이재는 헐렁하게 흘러내린 브래지어에 잠시 당황한 듯 웃고 말았다.브래지어까지 풀지는 않았는데 도언의 손이 어느샌가 등 뒤로 풀어버린 듯했다.“못 말린다니까.”덕분에 거의 드러난 가슴은 전부 도언의 차지였다.피곤하고 힘들 때면 도언은 이런 식이었다.이재 역시 기꺼이 그를 안아주었다.제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었다.이재는 깊이 잠든 도언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런던에서 서울까지 오는 긴 시간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비행기에서도 종종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방해할 수 없어 바라만 보았다.이재가 아직 전부 알지 못하는 차도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를 병원에서 봐야 하는 착잡함도 짐작만 할뿐이었다.차마 묻지 못한 수많은 번민을 안고 잠든 그가 안쓰러웠다.그의 번민에 자신 역시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차 회장의 수술이 잘 되어서 건강을 찾으면 도언의 마음이 편해질까.그러다 문득 병실에서 마주친 안서희를 떠올렸다.인사를 건넬 틈이 없어 눈인사만 했지만 눈이 마주쳤던 찰라의 순간에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뚫어지게 쏘아보는 눈빛과는 달리 언뜻 미소를 짓고
이재는 호명 가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5년 동안 매일 지나다니던 곳이었다.도경이를 만나러 안채에 가기 위해 걷던 길이었고, 도언을 마주칠까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도 못 하며 걷던 길이었다.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왔다.그것도 도언과 함께.“기분이 이상해요.”이재가 도언을 올려다보았다.곁에 섰던 도언이 이재의 앞에 마주 섰다.“뭐가 이상한데?”“다시는 못 올 줄 알았거든요.”도언은 이재의 그렁그렁해진 눈을 들여다보았다.한이재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도언은 단 한 번도 이재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재를 마주치기 위해 정원을 서성이던 날처럼 그녀가 떠난 이후로도 항상 기다렸다.불이 꺼진 그녀의 방을 올려다보며 매일 다짐했다.이재 너를 꼭 다시 이곳으로 데려오겠다고.“웰컴 백, 한이재.”도언은 길었던 기다림의 푸념은 넣어두고 그렇게 말했다.이제 여기서 너를 기다릴 일은 없겠지.네가 어디에 있든, 나도 네 곁에 있을 테니까.“조 여사님!”갑자기 이재가 도언을 뿌리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별채 앞에 조 여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어서 와요. 어서 와…….”조 여사가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이재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녕하셨어요?”조 여사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이재의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는 그의 맨몸을 볼 수 없어 눈을 돌렸다.하지만 그의 몸이 이미 눈에 들어온 뒤였다.'이런 게 남자의 몸인가?'이재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도언은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울룩불룩 탄탄한 몸이라는 것을 짐작할 만 했다.그런데 벗은 몸은 짐작했던 것 이상이었다.단단하게 뻗은 직각 어깨.그 아래 떨어지는 기다란 팔과 알맞게 붙은 근육.적당하게 오른 가슴은 탄탄함을 넘어 매끈한 나머지 혹시 랩이라도 씌워놓은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그리고 음영을 그려 넣은 것처럼 여섯 개로 쫙 갈라진
셔츠에 번진 김치 국물을 보니 쌍방 과실 같은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명백한 자신의 과실이 맞았다.이재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따라와요.”“네……. 네?”이재가 고개를 번쩍 들자 이미 돌아선 도언이 2층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이재가 허둥대며 그의 뒤를 따라가자 도언이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았다.“그건 두고.”도언이 이재가 들고 있던 김치 그릇을 턱짓으로 가리켰다.“아.”이재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테이블 조리대 위에 접시를 올려두었다. 나가려고 보니 접시를 들고 있던 손이 김
도언은 별채로 가는 정원 모퉁이에 서서 담배를 물었다.“후우…….”길게 빨아들였다가 내뱉는 연기가 갈증을 풀기라도 하는 듯 길게 이어졌다.도언이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서 반짝하고 불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호명가 고용인들이 머무는 숙소동이었다.1층, 2층, 3층…….3층.도언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숙소동을 보며 불이 켜진 방의 층수를 헤아렸다.지금 막 불이 켜진 방은 그녀의 방일 것이다.“한이재.”도언은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며 풀썩 웃음을 내뱉었다.아직도 그녀가 호명 가에 있
이재는 홀린 듯 도언을 보았다.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 밑에 길게 난 눈은 도경을 향한 웃음으로 반쯤 감겨 있었다.오뚝하게 솟은 코 아래 선이 짙은 입술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는 참 잘생긴 남자였다.도경이 제 형이 잘생겼다고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그러려니 했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차도경, 이제 컸다고 술을 마시고 다닌다, 이거지?”“왜 이래? 나 이제 스무 살이야.”“아, 그러세요? 스무 살?”형제의 웃음소리가 호명 가 안채를 울렸다.그 소리에 이재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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