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잠시후, 부름을 받고 형민 앞에 앉은 용규에게 선고가 떨어졌다.
“염증 반응 나왔구요, 임질입니다. 클라디미디아 감염 여부는 배양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가려운 증상은 없는 걸로 보아 아닌 걸로 보입니다만, 일단 항생제 처방 할게요. 주사 있고요. 당분간은 성관계를 피하셔야 해요. 상대 여자분도 반드시 치료를 받으셔야하니 다음 주에 오실 때 같이 오시던가 따로 산부인과에 가시라 전해주세요.”
“뭐, 말은 해뒀습니다. 생각이 있는 여자라면 알아서 하겠죠.”
형민은 잠시 입을 다물고 용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성아에게 눈짓을 했다. 성아는 형민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아채고는 살짝 웃으며 진료실을 나가주었다. 성병 환자에게 늘 하던 소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뭐 하나 틀린 말이 없고 부끄러워할 만한 내용이 아니건만 형민은 꼭 이렇게 간호사에게 자리를 피해줄 것을 요구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것에 대해
한참동안 욕실에서 몸을 식힌 용규는 잠시 부시럭거리더니 어느 새 하나 뿐인 침대에서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성아는 작게 웃었다. 용규에게 관심 없는 척하려 눈도 돌리지 않고 있었지만 귀를 세워 그의 움직임을 모두 듣고 있던 그녀였다. 그가 잠들었다는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놓이며 저도 모르게 웃고 만 것이었다. 용규에게 말한 대로 성아는 지금 있는 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적막함, 방 안에서 새어나오는 스탠드 불빛과 별빛을 제외한다면 완벽하다 할 수 있을 어둠, 나무 냄새가 실린 청량한 바람 끝에 느껴지는 쌀쌀한 기운까지. 지쳐있던 성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주었다. 민영의 권유로 시작한 '대놓고 양다리'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용규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때문에 형민과는 연달아 세 번의 데이트를 했고, 그 세 번의 데이트를 한 번에 만회할 정도의 여행을 오게 된 것까지. 스코어를 매긴다면 1대 1이라 할 수 있었다. 민영은 마음 놓고 즐기라고 했지만, 성아는 이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형민과 데이트를 할 때에는 용규가 신경 쓰였고, 이렇게 용규와 있다 보니 형민이 생각나서 무턱대고 즐길 수가 없었다. "양다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피식 웃음과 함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어둠 속에 흩어졌다. 성아는 몸을 일으켰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차가운 산공기에 조금씩 몸이 떨려오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용규가 잠들어 있는 침대와 의자 사이를 몇 번 오갔다. 잠시의 망설임 후, 그녀는 침대로 가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스탠드 불빛에 비친 용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잘생긴 건 여전했다. 한 번 찔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잘못해서 그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겨우 달래놨는데 들쑤셔서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성아는 쿡쿡 웃으며 용규 옆에 누웠다. 두껍지 않은 이불을 통해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욕실로 들어간 성아가 나오길 기다리다 용규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화장을 지우고 양치를 마친 성아가 욕실에서 나오다 피식 웃었다. 용규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서 흑심은 뭐하러 내보였는지. 실랑이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성아는 창가로 갔다. 산속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찼다. 잠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담요와 의자를 끌어와 창가에 자리 잡았다. 이 곳에서 보는 하늘과 서울에서 보는 하늘, 그게 그거고 거기서 거기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검은 융단같이 부드러운 검은 빛의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가끔 TV에서 그래픽으로 만들어놓은 많은 별들이 나올 때면 코웃음을 쳤더랬다. 아무리 별이 많다 하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저렇게 많을 리가 있겠냐며, 어설프게 많이 만드느니 적당하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비웃었더랬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인 밤하늘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흉내도 못 낼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성아는 그만 매료되어버렸다.어깨에 두른 담요를 가슴 앞에 모아 쥐고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성아는 뒤에서 어깨를 안아오는 팔에 깜짝 놀랐다. 잠들어 있던 용규가 언제 일어났는지 뒤에서 그녀를 안고 목덜미 움푹 파인 곳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아, 일어났어요?""깜빡 잠들었네요. 깨우지 그랬어요.""많이 피곤해 보였어요. 가서 더 자요."용규는 어깨를 안은 팔을 풀어내려 하는 성아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꼭 안았다. "성아 씨랑 같이 있는데 잠은 무슨. 다 깼어요."용규는 볼에 닿는 성아의 귓불에 부비적거리며 얼굴을 문질렀다. 보드라운 살결이 주는 감촉이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몇 번 버르적거리던 그녀가 가볍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한 듯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게 또 마음에 들어 슬며시 웃음지었다."별이 참 많죠?""그러네요
용규의 손이 멈췄다. 이거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는 품에서 성아를 살짝 떼어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 위에 보인 것은 웃음이었다."그렇게 예쁜 사진을 찍는 용규씨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풍경, 보고 싶다고요."용규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성아는 몇 가지 조건을 걸고 난 후에야 강원도행을 받아들였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일단 가고 나서 생각하는 거지.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랐다.부쩍 짧아진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춘 후에야 도착한 곳은 강원도의 팬션 단지에서 조금 더 들어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자리잡은 펜션이었다.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정원이 제법 넓었고, 불을 밝힌 건물 두 채는 통나무로 지은 2층집이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달라진 공기였다. 맑고 신선할 뿐 아니라 엷게 나무 내음과 풀내음까지 섞여있어 향기롭기까지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쉬는 성아를 보며 용규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나쁘지 않죠? 지금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저기 뒤쪽에 산책로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곳이죠. 내일 날 밝으면 같이 가요.""네."이것저것 설명하는 용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용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가벼운 욕설이 섞이는 걸 보니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그는 성아에게도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어서 오세요, 제수씨. 강충식입니다. 이 자식 눈이 높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정말 미인이십니다.""아, 안녕하세요, 김성아예요. 제수씨는 아니고요, 여기 굉장히 예쁘네요.""핫핫핫, 제수씨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언제든 놀러오세요. 제수씨 같은 미인이면 언제나 환영입니다."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성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 손을 마주잡았다. "제수씨 아니라 김성아예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한데 그 호칭은 다음에 받을게요.""다음에? 아, 아직 아닙니까? 너 이 자식 여태 뭐 한 거야?"조금
그럼 그렇지. 이까짓 거 필요 없어! 확 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바로 옆에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는 여자가 둘이었다. 속 좁게 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대범하게 하하 웃으며 받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맙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뭘 이런 걸 다."마지못해 열쇠고리를 받아든 형민을 향해 용규가 씩 웃었다. "뇌물 받으셨으니 청탁도 하나 받으시죠? 10분 일찍 퇴근시켜 주세요."가뜩이나 배알이 꼴린 상황인데 기름을 들이붓는 용규 덕에 형민은 당장 내 병원에서 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전에 영화 볼 때, 성아를 놓쳐선 안 되는 거였다. 그날 게임을 클리어 했다면 이 기분 나쁜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터였다. 뿐이겠는가. 저 뺀질뺀질한 얼굴이 패배감에 물드는 통쾌한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게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치솟아 오르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형민은 성아를 돌아보았다. 여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 속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김 선생님 업무 마치시면 그리 하시던가요."성아에게 차트 더미를 떠안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심술이 일어 떠안긴 일거리라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무려 10분이나 일찍 그녀를 보낼 뻔하지 않았는가. "일 많이 남았어요?" 형규가 접수대 위로 몸을 기대며 성아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민영에게서 나왔다."어우, 많이 남긴요. 끝났어요, 끝났어. 마무리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데려가요, 용규씨.""그렇다네요, 의사선생님?"용규의 웃는 얼굴이 너무너무 얄미워 한 대 치고 싶었으나, 형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속좁은 짓은 차트더미로도 넘치게 했으니, 이제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뵈어요.""데이트 잘 해요, 김 선생!""다음에 또 뵙겠습니다.""선물 잘 먹고 잘 쓸게요. 고마워요, 용규씨."즐
뜨거운물줄기가만들어낸수증기안에나체로선용규는오랜비행시간덕에몸여기저기에덕지덕지들러붙은피곤을씻어내는중이었다.12시간가까운비행시간도,8시간의시차도성아를만나고픈용규의바램을꺾을수는없었다.몸이먼저동한관계이긴했지만만나는횟수가늘어갈수록그녀는그의마음을끌어당겼다.도도한표정으로애태우던모습도,방어벽을허물고밝게웃던모습도자꾸만눈앞에아른거렸다.그런그녀를만나러간다는생각에저도모르게콧노래를흥얼거리고있었다.잔뜩김이서린거울에뜨거운물을뿌려맑게만든후,만족스러운표정으로그앞에섰다.아무리봐도잘났단말야.면도를마친매끈한턱을한번쓸면서씩웃고는수건을집어들고욕실을나섰다.시계를보니10분전4시.준비하고나가서백화점들르면얼추시간이맞겠다&nbs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상큼하게 웃으며 자기를 반겨주는 두 간호사의 모습에 남자는 쭈뼛거리는 걸음으로 접수대 쪽으로 다가왔다.“지난달에 한 번 왔었는데…….”“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양민철입니다.”이름을 밝히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성아의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두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남자의 얼굴에서 접수대 아래쪽에 고이 놓인 핸드폰으로 향했다. 부르르 한 번 떨고 난 핸드폰은 이제 램프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메시지로구나! 성아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민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민영도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성아를 한 번 쳐다보더니 씩 웃으며 엉덩이로 성아를 슬쩍 밀쳐 컴퓨터 앞에서 밀어냈다.“양민철 씨…… 67년 생 맞으시죠?”“네.”키보드를 두드려 남자의 파일을 찾은 민영이 성아의 옆구리를 마구 찔러대기 시작했다. 내가 할 테니 너는 메시지를 확인하라는 신호였다. 자기보다 더 열성적으로 궁금해하는 그 모습에 성아는 웃으며 핸드폰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한국 도착! 공항이에요.입술을 삐죽인 성아는 바닥에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민영 쪽으로 슬쩍 밀어서 보여주었다.“양민철 씨, 진료실로 들어가시면 됩니다.”슬쩍 눈을 내려 메시지를 확인한 민영이 시치미를 떼고는 환자를 진료실로 안내하며 ‘얼른 답문을 보내’라는 눈빛을 성아에게 보냈다.그 사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퇴근 시간에 맞춰서 병원으로 갈게요.성아는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비행기 타러 가요. 잘 다녀올게요. 그동안 내 생각 많이 해요’라는 문자만 보내고는 내내 연락도 없던 용규였다. 갑자기 심술이 났다.정식으로 데이트 한 번 못한 용규를 생각해서 형민의 적극적인 대쉬를 피해왔던 게 살짝 억울해졌달까. 딱히 연락을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전화 한 통 없었던 용규가 괘씸했다. 날 좋아한다면서 말이지, 경쟁자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빤히 알면서 이렇게 성의 없이!-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