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회랑을 가르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저하께서 나오신다! 길을 비켜라!”궁녀들이 서둘러 몸을 낮추고 양옆으로 갈라지며 조심스레 뒤로 물러섰다.그 순간 회랑의 공기는 누군가의 발걸음이 세상 전체를 장악하는 듯한 묵직하고 서늘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이수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녀의 손끝에서는 체온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저하가… 이리 빠르게 나오시다니.'그녀는 대비전에서 받은 무거운 말들이 아직 어깨에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무게는 지금 세자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짓눌렸다.회랑 끝에서 현의 모습이 드러났다.단정한 의복, 나직하게 흩어진 머리장식,표정은 온화한 듯했으나 그 안에 감춰진 감정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이수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그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던 조용한 공기들이 서서히 갈라져 나갔다.이수는 들숨을 한 번 억지로 목에 걸어 올렸다.그러나 그것마저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현은 마침내 그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바람 한 줄기도 없이 둘 사이에는 말하지 않은 수천 마디가 고요하게 떠 있었다.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빈.”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얼핏 부드러워 보였지만그 안에는 분명한 긴장이 깃들어 있었다.이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저하.”현은 그녀의 모습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다.그러나 차갑지도 않았다.오히려 온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곳에서 천천히 심연을 드러내는 듯한 눈이었다.“대비전에서… 무슨 말씀이 오갔소?”직설적이지 않다. 그러나 회피도 아니다.궁에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보통 감정이 개입되었음을 뜻했다.이수는 짧게 눈을 내리깔았다.“…대비마마께서는… 궁 안의 예를 어지럽히지 말라 하셨사옵니다.”현의 눈빛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예를… 어지럽히지 말라.”그는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은 세자 자신을 겨냥한 것이다.그리고 동시에 이수를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
수련장에서는 아직도 대비전으로 향하던 소식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장 무사가 말을 이은 뒤에도 도진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마치 몸에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균열이 나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처럼.“빈마마가… 나오셨다오.”그 말을 전하는 궁인의 숨결이 흐트러진 바람처럼 스쳤다.도진은 손끝을 굳게 다물었다.“…어디로 가셨는가.”“대비전 뜰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하옵니다. 지금은 회랑 쪽으로 향하고 계신다고…”그 말이 끝나자마자 도진의 몸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걸음은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그러나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속도였다.대비전으로 이어지는 회랑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했지만 오늘은 그 침묵이 지나치게 깊었다.바람 한 줄기도 멈춘 듯했고 궁녀들의 발소리는 한층 더 조심스러워져 있었다.도진이 회랑 모퉁이를 돌기 직전, 멀리서 작은 군집의 움직임이 보였다.궁녀들이 서너 명, 서둘러 길을 비켜 서고 있었다.그들 사이로 하얀 비단 옷자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이수였다.멀리서 보아도 그녀의 걸음은 흔들리고 있었다.평소 그녀가 가진 단정한 걸음과 다르게오늘은 마치 숨을 고르는 매 순간마다 가슴 어딘가가 조여드는 듯한 움직임.도진은 무의식적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심장이 갑자기 쿵 하고 떨어졌다.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했다.'왜… 왜 저 얼굴을 보는데 이렇게 아프지.'이수는 가까이 오고 있었다.도진은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이 닿은 곳 이수의 얼굴은 숨을 죽이며 견뎌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눈가에는 피로와 긴장의 자국. 입술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걸음은 흐트러지기 직전에서 간신히 균형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눈은 조용히, 아주 깊은 곳에서 무너진 뒤 아직 다시 서지 못한 빛을 띠고 있었다.도진의 가슴이 쓰렸다.근거도 없이, 이유도 없이.그저 그녀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궁궐 깊숙한 세자의 동궁에는 아침보다 더 깊고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현은 책상 위 펼쳐진 문서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나글자는 하나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먹물처럼 점점 퍼지는 마음의 불안이 글자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책상을 두드리던 손끝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스스로도 느꼈다.'무엇 때문인가… 왜 이리 마음이 시끄러운가.'그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내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저하… 전하의 대비마마께서…방금… 빈마마를 불러 드셨사옵니다.”현의 손끝이 마치 차가운 물에 빠진 듯 굳었다.“…대비마마께서 빈을?”“예, 저하. 급히 들라 하셨다 하옵니다.”그 말은 도끼로 쪼개는 소리보다 더 무겁게 현의 귀에 내려앉았다.대비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궁 전체가 들썩이는 인물이다.그런 대비가 가벼운 이유로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다.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빈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에 실린 감정은 날카로운 철편 같았다.내시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빈마마의 처소 근처에서 어젯밤… 일이 있었던 모양이옵니다.”“일?”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내시의 말을 겨누듯 시선을 보냈다.내시는 더 말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저하께서… 어젯밤 빈마마 처소 주변을 거닐었다는 말씀이…궁인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하옵니다.”현의 손이 책상을 강하게 눌렀다.탁~소리가 동궁 안을 울렸다.'소문이… 벌써 퍼졌단 말인가.'그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자신이 어젯밤 빈의 처소 근처를 거닐었던 것은 단지 마음을 정리하려는 걸음이었으나,궁은 사소한 숨결 하나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그것이… 대비마마의 귀에 들어갔다는 것이냐.”“예, 저하. 전각에서 여러 궁인들이 그 움직임을 조금…예사롭지 않게 여겼다 하옵니다.”현의 표정이 굳어졌다.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나너무 차가워지는 바람에 오히려 금이 가는 듯한 느낌을 풍겼다.궁이 빈을 향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한
대비전의 문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무게를 가지고 닫혔다.문 하나가 닫힐 때 이수는 그것이 단순한 문이 아니라자신을 향한 세상의 경계가 ‘철컥’ 하고 잠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 작은 소리 하나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울렸다.'나는… 무사한 것일까.'걸음을 떼려 했으나 발끝이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마치 조금만 움직여도 쏟아질 것 같은 감정들을 간신히 붙들고 서 있는 사람처럼. 궁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빈마마… 밖으로 모시겠사옵니다.”이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회랑을 나와 대비전의 뜰에 발을 디디는 순간바람 한 줄기가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가며 심장이 한 번 크게 패였다.마치, 대비전에서 버텨낸 모든 담담함이 문밖에서 허물어지는 듯했다.그녀는 회랑 기둥 가까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섰다.궁녀들이 뒤에서 조심스레 거리를 두고 따르고 있었지만 아무도 감히 말을 걸지 않았다.달빛도, 햇빛도 아닌 그저 적막이 깔린 낮의 뜰.이수는 그 적막 속에 온몸이 잠겨버린 듯했다.'대비마마의 질문들…''나를 향한 눈빛…''그 침묵의 무게…'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무도 듣지 못하게 속에서만 조용히 일어났다.그리고 그 무너짐의 틈 사이로 또다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도진.달빛 아래 서 있던 그의 옆모습.말없이 자신을 보던 눈.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또 다른 시선.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금으로 이어지며 가슴을 조였다.'왜… 왜 그때를 떠올리면 이렇게 아픈가.'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정녕… 내 마음은 어제의 흔들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그러나 대답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이미 일어나 있었다.이수는 기둥에 손을 짚었다.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평소 같으면 단정한 동작으로 숨을 골랐겠지만 오늘은 숨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가슴이 조였다.목이 메였다.눈은 뜨거워졌다.하지만 울 수 없었다.궁은 눈물조차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수련장에는 아직 아침 햇빛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도진은 대나무 검을 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몸은 평소처럼 움직였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걸음 하나, 휘두름 하나마다 어딘가 균형이 흐트러진 느낌.'왜 이리 마음이 흔들리는가…'그는 스스로에게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지만어젯밤 이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진동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검 끝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수련장 끝에서 급히 달려오는 발걸음이 들렸다.도진은 검을 멈추고 돌아보았다.장 무사였다.그의 얼굴은 안색이 변해 있었고 숨까지 거칠었다.나쁜 소식임을 말하기도 전에 느낄 수 있는 얼굴이었다.“도진…”그 한마디만으로도 도진의 심장이 먼저 움츠러들었다.“…무슨 일인가.”장 무사는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고 가까이 다가왔다.목소리는 낮았으나 안에 담긴 무게는 너무 컸다.“빈마마께서… 대비전으로 들라 하셨다오.”그 말은 천둥처럼 크지는 않았지만뼛속에서 울리는 벼락과 같았다.도진의 손끝이 아주 조용히 떨렸다.“…대비전으로.”“그래. 게다가 중전전에서도 동시에 부름이 내려왔다 하오.”도진의 숨이 흐트러졌다.“곧바로 두 전각에서 모두? 빈마마에게?”장 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하오.”그 말의 의미는 너무 선명했다.대비와 중전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일은 궁에서 거의 없었다.그것은 이미 사건이었다.도진은 검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그러나 들여온 숨이 폐끝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또다시 어딘가에서 가로막혔다.심장이 아주 얇게 찢어지는 듯한 통증.도진은 그 통증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이수…그녀의 이름이 마음속에서 불쑥 떠오르자 가슴이 더 아려왔다.'왜? 왜 그녀가 두 전각에서 불려가는 것이 이토록 견디기 어렵나.'도진은 스스로를 탓하듯 이를 천천히 악물었다.“…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대비전에서 빈마마를 부르시는가.”장 무사는 고개를 숙였다.“빈마마께 무슨 문
대비전의 문이 천천히 열릴 때,그 안에서 흘러나온 공기는 마치 다른 계절처럼 차갑고 정적이었다.이수는 문턱 앞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천천히 발을 들였다.대비전 안은 향 냄새도, 사람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오직 정제된 침묵만이 공간의 주인이었다.대비는 하얀 비단 방석 위에 가만히 앉아 손에 들고 있던 묵주를 굴리고 있었다.머리맡에 걸린 매화 자수가 그녀의 권위를 드러내듯 고요하게 빛났다.이수는 예를 갖춰 무릎을 꿇고 상반신을 깊게 숙였다.“빈, 이수… 대비마마께 인사 올리옵니다.”그 말이 끝나자 대비전의 공기는 더 깊게 가라앉았다.대비가 바로 답하지 않은 시간이 이수의 마음을 천천히 압박했다.잠시 후, 대비가 입을 열었다.“고개를 들라.”이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대비의 표정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그저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아주 깊은 눈이었다.“빈.”그 한마디가 가벼운 호칭이 아니라 심문을 여는 첫 문장처럼 들렸다.“너를 부른 이유를 아느냐.”이수는 심장이 한 번 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마마의 명을 받고 서둘러 들었을 뿐이옵니다. 사유는… 알지 못하옵니다.”대비는 천천히 묵주를 굴렸다.“그러하겠지. 궁은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이니.”그녀는 잠시 이수를 바라보다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어젯밤, 너의 처소 앞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보아라.”이수는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벌써 그 이야기까지 도달했구나.'그러나 표정 하나 흔들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이수는 침착하게 말했다.“어젯밤… 달이 밝아 잠시 회랑을 거닐었사옵니다. 그뿐이옵니다.”대비는 눈썹을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그뿐이라 하였다.”이수는 고개를 숙였다.“예, 마마.”대비는 가만히 말했다.“그러면… 그 자리에 세자 저하가 계셨다는 것도 모르느냐.”이수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세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수는 알고 있었다.몸으로, 기척으로, 공기로
밤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달빛은 기와 위에서 희미하게 번졌고,바람은 소리 없이 건물의 모서리를 스쳤다.도진은 이수의 처소에서 멀어질수록오히려 마음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 잡는 걸 느꼈다.그 감정은 단순한 경계심이 아니었다.호위무사로서 세자빈을 지키려는 의무감도 아니었다.그것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가슴을 묘하게 죄어오는 부끄러울 만큼 인간적인 감정.도진은 발걸음을 멈췄다.그는 무사였다.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며, 의무를 지키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오늘 하루 동안
현은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단순한 명령자의 시선이 아니었다.오랜 우정과 굳건한 믿음이 깔려 있으나,그 밑바닥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마마의 밤이니만큼…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을 더 살펴보아라.”명분 있는 명령이었다.그러나 그 말 속에는 ‘왜 네가 여기에 있었느냐’는 질문보다도 더 깊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도진은 눈을 내렸다.“…예, 저하.”그는 마지막으로 이수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그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다시 천
이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침묵이 짧게 흘렀다.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많은 말들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하루… 마마께서 많이 지치셨을 듯하여 저하께서도 염려가 깊으셨사옵니다.”그 말은 조심스럽고 공손했다.그러나 그 속에는 세자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이수는 시선을 창호로 옮기며 말했다.“…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숨을 감추고 있는 곳이더이다.”도진은 그 말에 정답처럼 대답하지 않았다.오히려 아주 짧게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
그 말은 단순한 배려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먼저 그녀를 품으려는 의지가,그리고 동시에 도진을 묘하게 견제하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전각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다.세상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새소리, 바람 소리, 궁인들의 바쁜 발걸음.이수는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거기 호위무사.”도진은 고개를 돌렸다.“예, 마마.”“저하와 내가… 잘 어울리오?”이 질문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도진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이수는 그 미묘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