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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봐주지 않는다

ผู้เขียน: Jino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10-15 08:41:25

제2조(개정) 단서. 단, 회의에선 봐주지 않는다.

(냅킨 계약서는 파기됐다. 이 단서만은 둘이 살려 두기로 했다. 명문화는 안 했다. 둘 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돼지국밥집이 조용해졌다.

오태주는 숟가락을 든 채 대답을 기다렸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이 사람은 농담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년에 이현에게 다섯 번째 제안을 했던 사람이었다.

서윤은 국밥 그릇을 내려다봤다. 부산.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 반대를 배우기 시작한 착한 팀. 10초마다 도는 등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좋았다.

그리고 옆을 봤다. 이현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둘 다 서울에 끝까지 할 일이 있어서요."

같은 문장이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이현도 다물었다. 둘은 서로를 봤다. 연습한 적이 없었다.

오태주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박수를 쳤다. 세 번.

"거절도 세트네예." 오태주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엔 진짜 포기할게요. 대신 등대 편지는 끝까지 같이 해요. 세트로."

"네."

"네."

또 동시였다. 오태주가 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중얼거렸다. "서울 회사에 이런 거 보는 방이 있다더니. 나도 들어가고 싶네."

"……그 방 어떻게 아세요?"

"차 리드 거절 메일 받은 날, 거기 팀장님이 저한테 전화하셨어예. 사과하시면서. 끝에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애들 좀 봐주세요. 씨름 방 초대해 드릴까요?'"

이현이 이마를 짚었다. 서윤은 웃음을 참다가 국밥 국물에 사레가 들렸다.

그날 밤 이현은 막차로 올라갔다. 서윤의 부산 2주는 그다음 주에 끝났다. 등대 편지의 세계관과 편지 시스템이 맞물렸고, 파란등대 개발자는 이제 하루에 세 번씩 "안 됩니다"를 말했다. 오태주는 헤어질 때 서윤에게 컵 하나를 줬다. 등대 그림이 그려진 머그컵이었다. 옆면에 삐뚤빼뚤한 매직 글씨. '1/2'.

서울역 플랫폼에는 이현이 서 있었다. 2주 전 손을 들고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서윤이 새 바퀴 달린 캐리어를 끌고 내리자, 그는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캐리어 손잡이를 받아 들었다.

"바퀴 어땠어요?"

"조용했어요. 부산 사람들이 제 캐리어 소리 못 들었어요."

"다행이네요."

"아쉬웠어요." 서윤이 말했다. "그 소리 때문에 누가 돌아봐 준 적이 있거든요."

이현이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캐리어 바퀴가 조용히 굴렀다.

월요일 아침 12층은 소란스러웠다. 민지가 서윤을 보자마자 의자를 굴려 와 안겼다. "선배, 반박 대응집 이제 안 써도 되죠? 차 선임님이 저한테 한 번도 안 지셨어요. 한 번도 안 이기셨고요." 개발팀 막내는 서윤 책상에 '복귀를 환영합니다. 회의실이 너무 조용했습니다'라는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팀장은 아무 말 없이 서윤 자리를 지나가며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아빠식 포옹과 비슷했다.

서윤은 가방에서 등대 머그컵을 꺼내 모니터 옆에 놓았다. 옆자리 파티션 너머로 이현이 그 컵을 봤다. '1/2'. 삐뚤빼뚤한 글씨.

"제 글씨가 아니네요."

"부산 글씨예요. 질투해요?"

"……조금요."

서울로 돌아온 첫 주, 등대 편지 본부장 중간 보고가 잡혔다.

대회의실. 본부장, 팀장, 파란등대 쪽 화상 연결. 개발 리드는 이현이었다. 합동 이벤트의 개발 쪽은 원래 그의 팀 몫이었다.

서윤은 레이저 포인터를 들었다. 부산에서 다듬은 기획이었다. 등대 불빛이 10초마다 돌며 편지 한 줄씩을 스치고 지나간다. 유저는 편지를 쓰고, 등대에 맡기고, 상대는 불빛이 지나갈 때마다 한 줄씩 받는다. 80자가 다 도착하는 데 여덟 바퀴. 80초.

"기다리는 시간이 곧 설렘입니다."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개발 쪽 리스크는? 차 선임."

이현이 노트북을 열었다. 반쯤 덮지 않았다. 서윤은 그걸 봤다. 이상했다.

"특별한 리스크는 없습니다. 일정대로 가능합니다."

본부장이 서류에 서명했다. 회의는 이십 분 만에 끝났다. 서윤과 이현이 같이 들어간 본부장 보고 중 최단 기록이었다. 팀장이 회의실을 나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윤도 갸웃했다. 특별한 리스크가 없다. 이 사람 입에서 그 문장이 나온 건 5년 동안 처음이었다. 이 사람은 완벽한 기획서에도 리스크를 세 개씩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의 사랑 방식이라는 걸 그녀는 이제 알았다.

오후에 파란등대 개발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파란등대 개발: 정 기획자님, 말씀하신 동기화 이슈 수정본 보내드려요!]

[파란등대 개발: 피크 시간대 동시 접속에서 불빛 주기가 어긋나는 거요. 차 리드님이 지난주에 메일 주셔서 저희가 먼저 고치고 있었어요.]

서윤은 화면을 두 번 읽었다.

동기화 이슈. 피크 시간대에 수십만 명이 동시에 편지를 받으면, 등대 불빛의 10초 주기가 유저마다 어긋날 수 있다. 편지 한 줄이 불빛보다 먼저 뜨거나 늦게 뜬다. 연출의 핵심이 깨진다.

그녀가 놓친 구멍이었다.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그러나 본부장 앞에서 짚었어야 하는 구멍이었다. 그리고 이현은 그걸 알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서윤은 메신저를 열었다.

[정서윤: 탕비실.]

이현은 삼 분 만에 왔다. 달토끼 머그컵을 들고. 서윤은 휴대폰 화면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왜 회의에서 말 안 했어요?"

이현이 화면을 봤다. 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미 해결 중이라서요. 해결 중인 걸 본부장님 앞에서 리스크라고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저한테는요? 제 기획인데. 지난주에 알았으면 저한테 말했어야죠."

"부산에서 마무리하느라 바쁘셨잖아요."

"바빠도요."

"통화 때 피곤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파란등대랑 먼저……."

"그게 봐준 거예요."

서윤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탕비실 문밖에서 누군가 발을 멈추는 소리가 났다. 서윤은 목소리를 낮췄다. 낮추니까 더 차가워졌다.

"제2조 단서요. 회의에선 봐주지 않는다. 우리가 제일 먼저 정한 거잖아요. 사귄다고 기획서 봐주면 팀에 민폐라고."

"봐준 게 아니라니까요. 해결한 거예요."

"제 구멍을 제 뒤에서 막은 거잖아요. 제가 모르게."

"알게 됐잖아요, 지금."

"파란등대 개발자한테서요!"

이현이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조용히. 그의 얼굴이 굳었다. 회의실에서 반박을 들을 때의 고요함과는 달랐다. 뭔가를 참는 얼굴이었다.

"서윤 씨가 부산에서 혼자 애쓰는 거 봤어요. 매일 밤 화면으로요. 거기에 구멍 하나 더 얹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그렇게 잘못이에요?"

"잘못이에요." 서윤이 말했다. "저는 구멍을 지적받고 싶어요. 5년 동안 그래서 싸운 거잖아요. 이현 씨가 봐주기 시작하면, 저는 제 기획이 좋은 건지 이현 씨가 봐준 건지 모르게 돼요."

이현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그럼 앞으로 서윤 씨가 힘들어 보여도 모른 척하라는 거예요?"

"회의에서는요."

"회의 밖에서 알게 된 걸 회의 안에서 어떻게 모른 척해요. 저는 그렇게 둘로 안 나뉘어요."

"나눠야 해요. 그게 우리 조건이었어요."

"그건 가짜 연애 때 조건이었잖아요."

그 말에 서윤이 멈췄다. 이현도 멈췄다. 말이 나가고 나서야 둘 다 그게 무슨 뜻인지 들었다. 그럼 진짜 연애에서는 봐줘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 조건도 가짜였다는 뜻인가.

탕비실 커피 머신이 혼자 웅웅거렸다.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예약 추출이었다.

"……저 먼저 갈게요." 서윤이 말했다.

"서윤 씨."

"회의 자료 정리해야 돼요."

그녀는 탕비실을 나왔다. 문밖에 민지가 서 있었다. 종이컵을 든 채, 아무것도 못 들은 얼굴로. 다 들은 얼굴이었다.

그날 오후 12층은 이상했다. 서윤과 이현은 서로에게 메신저를 보내지 않았다. 싸운 날에도 늘 보내던 공수 파일 공유 요청도 없었다. 서윤의 책상 위에는 아침에 놓인 라떼가 반쯤 남아 있었다. '시럽 1/2, 얼음 조금'. 얼음이 다 녹아 있었다.

씨름 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방장: 상황 파악 중. 추측성 게시글 삼가 바람.]

[민지: 휴전인가요 냉전인가요]

[개발팀 막내: 차 선임님이 오후에 버그를 세 개 고쳤습니다. 평소엔 하루에 하나 고치십니다]

[디자인팀 신입: 정 선임님이 포스트잇에 뭘 쓰셨다 지우셨다 하세요. 열한 번째]

[방장: 삼가 바람.]

퇴근 시간. 서윤은 먼저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내 공개 이후 처음으로 혼자 퇴근했다.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서윤은 신발도 벗기 전에 가방에서 매뉴얼을 꺼냈다. 부산 2주 운영 매뉴얼. 제1항. 매일 밤 9시 영상통화.

부산 매뉴얼이었다. 부산 2주는 끝났다. 서울에선 효력이 없었다.

그녀는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A4를 꺼냈다. 연애 기획서 v1.1. 네 번 접힌 자국이 이제 선명했다. 제1조. 정서윤과 차이현은 서로에게 계속 빠진다. 밑줄 두 번.

싸운 날에도 적용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기간도, 예외도, 부칙도 없는 조항이었다. 빨간 볼펜을 쥔 채 '부칙은 없는 걸로' 정하던 밤이 떠올랐다. 위반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던 밤.

위반은 아니었다. 지금도 빠져 있었다. 화가 나 있는데도. 그게 더 화가 났다.

아홉 시가 됐다.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서윤도 켜지 않았다.

아홉 시 십 분에 휴대폰이 울렸다. 서윤은 거의 떨어뜨릴 뻔하며 화면을 봤다.

[할머니: 둘이 싸웟나]

[할머니: 둘다 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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