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빛
이혼 소송 재판이 열리던 날, 재판부는 먼저 우리의 혼인 관계에 대해 물었다.
“두 분은 결혼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혼인 관계가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됐다고 보십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결혼한 뒤 3년 내내 저희는 줄곧 따로 살았습니다.”
“재판장님, 이런 관계에 아직 부부로서의 애정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사람과 5년을 연애했다.
연애할 때부터 그 사람의 카톡 상단에 고정된 채팅방은 언제나 나와의 대화방이었다.
휴대폰 긴급 연락처에도 내가 등록되어 있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가입한 생명보험의 보험금 수익자도 나였다.
그래서 나는 정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그 사람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아프셔.”
그 사람은 모든 걸 뒤로한 채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 3년 동안, 그 사람은 매일 끼니때마다 내게 밥 사진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진 속에 그의 어머니가 찍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런 그 사람이 안쓰러워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내려가 함께 어머니를 간호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난 당신이 힘들어하는 건 싫어.”
그리고 한 달 전.
나는 우연히 암 투병 일상을 올리는 한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발견했다.
그 여자의 브이로그 속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영상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사람이 있고, 하루 세 끼도 그 사람과 함께. 꼭 맞잡은 두 손 역시 그 사람의 손.]
그럼 나는?
1095일 동안 내 곁에 있었던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속이고 있었다.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내 의사를 확인했다.
“그래도 이혼하겠다는 의사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나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이혼 판결이 내려진 순간, 판결문을 바라보던 나는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한지성, 이제 너를 놓아줄게.’
그리고 나 자신도, 이제는 자유롭게 놓아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