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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쓸 운명
다시 쓸 운명
Author: 유화

제1화

Author: 유화
“저는 이 혼인 못하니, 쟤 보내세요.”

앙칼진 목소리에 설은영은 정신이 돌아왔다.

회귀한지 이틀째,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흐릿한 상태로 전생의 악몽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상대는 진국장군부다. 연 장군과의 혼인을 거부하고 최씨 가문과의 혼약을 지키겠다는 거니?”

설 부인 강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지를 전하러 온 태감은 이미 돌아가고 자리에 없었다. 황제는 설씨 가문의 딸을 진국 부인으로 봉하겠노라 황명을 내렸다.

진국공은 일품 공작이었다.

고작 삼품 시랑인 설씨 가문은 원래대로라면 바라볼 수도 없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진국공 연준은 지난해 병사를 이끌고 남원 전장에 나갔다가 성공적으로 남원을 격퇴시켰지만 적들의 독에 당해 쓰러지고 말았다.

명의가 전력을 다해 치료한 끝에 마침내 독소를 그의 복부 아래로 몰아내며 그는 비로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다리는 불구가 되고 자식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귀족가의 딸들이 흠모하던 백마 탄 소년 장군은 이제 모두가 기피하는 폐인이 된 것이다.

황제는 연씨 가문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를 위해 신부를 점지해 주기로 하였다.

수많은 세력들이 이로써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설 시랑은 이 혼사가 자신의 가문에 차려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은비는 강씨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저와 최씨 가문의 혼약은 아버지께서 점지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약조를 이행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상석에 앉은 설 시랑은 흡족한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

설은비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씨 가문은 비록 몰락하였지만 한때 청렴한 양반 가문이니, 일반 가문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공을 들여 키워낸 딸이니 당연히 다른 권세 가문의 여식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지요. 제 지략과 아버지 어머니의 도움이 있고 최 공자의 우수한 품성으로 재기하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그녀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은영은 적녀인 언니가 자신처럼 회귀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생에 언니는 몰락한 최진겸을 하찮게 생각했기에 교지가 내려지자마자 흔쾌히 황명을 받아들이고 존귀한 국공 부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설은영은 언니의 혼약을 물려받은 행운아가 되기도 했다.

서녀인 그녀는 집안에서도 예쁨을 받지 못하니 가문을 떠나는 것이 매우 달가운 일이었다.

최씨 가문에 시집을 간 이후, 그녀는 정성껏 시부모님을 보살피고 부군을 내조하였으며 어떻게 하면 가문을 위해 부를 쌓을까 매일 고민하고 노동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후, 설은비는 진국공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설은영의 부군인 최진겸은 술 취한 채 돌아와 밤새 설은비의 이름을 불렀다.

최진겸은 줄을 잘 섰기에 승승장구하며 문관의 최정상에 서게 되고 역사 이래 가장 어린 승상이 되었다. 그리고 설은영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일품 고명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고생 끝에 마침내 낙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설은영은 고명부인으로 봉해지던 그날 밤, 완전한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최진겸은 설은비의 죽음을 모조리 그녀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그는 그녀가 두 사람을 갈라놓고 원래 설은비에게 속한 혼약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수년간, 그녀는 마구간에서 생활하며 변질한 음식을 먹고 개처럼 목숨만 연명하며 살았다. 집안의 시종들마저 수 틀리면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폭행을 퍼부었다.

한때 최선을 다해 보살폈던 시어머니는 한 번도 그녀를 위해 나서준 적 없었다.

열 달 배 아파서 낳은 아들마저 그녀를 혐오했고 최진겸이 데려온 첩실에 의해 사지가 잘리고 단지에 담겨 인간돼지가 되었다.

결국 설은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밤에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자신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회귀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늘이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주신 걸까?

설은영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최진겸과 다시 혼례를 올린다면 또 죽음에 이르는 결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시 우리 설씨 가문의 딸 답구나. 네 말이 맞다.”

설 시랑은 아낌없이 딸을 치하하고는 옆에서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녀를 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저 아이를 진국공부에 보내자꾸나.”

부인 강씨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설은영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연 장군이 자식 복을 누릴 처지가 못되고 다리도 불구가 되어 평생 바퀴의자에 의지해야 하는 폐인이 되었다지만, 어쨌거나 진국공이었다.

그녀는 정성껏 가르치고 키운 딸이 쇠퇴한 집안에 시집을 가야 하는데 서녀 주제에 오히려 자신의 딸보다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서 국공 부인이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군….”

설 시랑은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황명은 이미 내려왔는데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부인?”

강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 시랑에게는 딸이 둘뿐이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혼사를 거부하는 것은 황명을 거역하는 것이니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중죄였다.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설은비가 이미 선택을 한 이상, 이 혼사는 설은영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설은영은 자신의 거처인 망서관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설은영의 마음 속에 있던 원한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측실 추씨, 시랑 설충의 유일한 첩실이자, 명의 상으로는 설은영의 어머니였다.

아주 오래전, 추 측실은 아이를 바꿔치기하였다. 그리하여 본래는 설 시랑의 적장녀였어야 할 설은영은 모두가 무시하는 서녀가 되었다.

전생에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설은영은 온갖 분노와 원한을 안고 죽었고, 회귀했다.

다시 인생을 살 기휘가 생겼으니 전생의 모든 원한을 씻어내고 복수하리다!

‘전생에 나를 짓밟았던 인간들, 누구든 용서치 않아!’

오직 원수의 흐르는 피만이 그녀의 증오를 씻어낼 수 있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어머니.”

그녀는 추 이랑의 맞은편으로 다가가 앉았다. 시녀 취아가 다가와 그녀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르고 조용히 뒤로 물러갔다.

추 이랑은 경멸에 찬 눈길로 취아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진국공부에 시집을 간다고 감히 너 따위가 이젠 이 어미도 안중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냐?”

추 이랑은 아무도 모르게 두 아이의 신분을 바꿔치기하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러니 설은영이 진국공부로 시집을 간다 한들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은영은 더 이상 그녀의 앞에서 떨기만 하던 나약한 서녀가 아니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상서 최진겸의 부인으로서 몇 년을 살았고 황궁에 출입하였으며 수많은 귀족가의 안주인들과 교류했다.

일개 첩실 따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진국공은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불구이고 자식을 볼 수도 없는 몸입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희열에 찬 추 이랑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우스울 수 없었다.

그녀가 비참해질수록 눈앞의 여인은 행복한 것 같았다.

설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도 평생 독수공방 신세를 면치 못할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더 깔끔할지도요.”

추 이랑의 눈빛에 광기의 웃음이 서렸다.

‘제 발로 죽겠다고? 이런 횡재가?’

그녀는 치솟는 희열을 억제하며 코웃음 쳤다.

“죽겠다는 애를 내가 무슨 수로 말리니? 밖에 우물이 있더라. 판단은 네 몫이지.”

말을 마친 그녀는 손수건을 챙겨 일어났다.

추 이랑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찔한 통곡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둘째 아씨가 우물에 빠졌어요! 어서 와서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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