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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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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lis: 叶叉叉

제1화

Penulis: 叶叉叉
“저는 이 혼인 못하니, 쟤 보내세요.”

앙칼진 목소리에 설은영은 정신이 돌아왔다.

회귀한지 이틀째,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흐릿한 상태로 전생의 악몽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상대는 진국장군부다. 연 장군과의 혼인을 거부하고 최씨 가문과의 혼약을 지키겠다는 거니?”

설 부인 강씨는 못마땅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지를 전하러 온 태감은 이미 돌아가고 자리에 없었다. 황제는 설씨 가문의 딸을 진국 부인으로 봉하겠노라 황명을 내렸다.

진국공은 일품 공작이었다.

고작 삼품 시랑인 설씨 가문은 원래대로라면 바라볼 수도 없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진국공 연준은 지난해 병사를 이끌고 남원 전장에 나갔다가 성공적으로 남원을 격퇴시켰지만 적들의 독에 당해 쓰러지고 말았다.

명의가 전력을 다해 치료한 끝에 마침내 독소를 그의 복부 아래로 몰아내며 그는 비로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다리는 불구가 되고 자식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귀족가의 딸들이 흠모하던 백마 탄 소년 장군은 이제 모두가 기피하는 폐인이 된 것이다.

황제는 연씨 가문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를 위해 신부를 점지해 주기로 하였다.

수많은 세력들이 이로써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설 시랑은 이 혼사가 자신의 가문에 차려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은비는 강씨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저와 최씨 가문의 혼약은 아버지께서 점지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약조를 이행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상석에 앉은 설 시랑은 흡족한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

설은비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씨 가문은 비록 몰락하였지만 한때 청렴한 양반 가문이니, 일반 가문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공을 들여 키워낸 딸이니 당연히 다른 권세 가문의 여식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지요. 제 지략과 아버지 어머니의 도움이 있고 최 공자의 우수한 품성으로 재기하는 건 시간문제일 거예요.”

그녀는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은영은 적녀인 언니가 자신처럼 회귀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생에 언니는 몰락한 최진겸을 하찮게 생각했기에 교지가 내려지자마자 흔쾌히 황명을 받아들이고 존귀한 국공 부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설은영은 언니의 혼약을 물려받은 행운아가 되기도 했다.

서녀인 그녀는 집안에서도 예쁨을 받지 못하니 가문을 떠나는 것이 매우 달가운 일이었다.

최씨 가문에 시집을 간 이후, 그녀는 정성껏 시부모님을 보살피고 부군을 내조하였으며 어떻게 하면 가문을 위해 부를 쌓을까 매일 고민하고 노동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후, 설은비는 진국공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설은영의 부군인 최진겸은 술 취한 채 돌아와 밤새 설은비의 이름을 불렀다.

최진겸은 줄을 잘 섰기에 승승장구하며 문관의 최정상에 서게 되고 역사 이래 가장 어린 승상이 되었다. 그리고 설은영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일품 고명부인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고생 끝에 마침내 낙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설은영은 고명부인으로 봉해지던 그날 밤, 완전한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최진겸은 설은비의 죽음을 모조리 그녀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그는 그녀가 두 사람을 갈라놓고 원래 설은비에게 속한 혼약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수년간, 그녀는 마구간에서 생활하며 변질한 음식을 먹고 개처럼 목숨만 연명하며 살았다. 집안의 시종들마저 수 틀리면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폭행을 퍼부었다.

한때 최선을 다해 보살폈던 시어머니는 한 번도 그녀를 위해 나서준 적 없었다.

열 달 배 아파서 낳은 아들마저 그녀를 혐오했고 최진겸이 데려온 첩실에 의해 사지가 잘리고 단지에 담겨 인간돼지가 되었다.

결국 설은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밤에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자신이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회귀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늘이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주신 걸까?

설은영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최진겸과 다시 혼례를 올린다면 또 죽음에 이르는 결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시 우리 설씨 가문의 딸 답구나. 네 말이 맞다.”

설 시랑은 아낌없이 딸을 치하하고는 옆에서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녀를 돌아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저 아이를 진국공부에 보내자꾸나.”

부인 강씨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설은영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연 장군이 자식 복을 누릴 처지가 못되고 다리도 불구가 되어 평생 바퀴의자에 의지해야 하는 폐인이 되었다지만, 어쨌거나 진국공이었다.

그녀는 정성껏 가르치고 키운 딸이 쇠퇴한 집안에 시집을 가야 하는데 서녀 주제에 오히려 자신의 딸보다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가서 국공 부인이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군….”

설 시랑은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황명은 이미 내려왔는데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부인?”

강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 시랑에게는 딸이 둘뿐이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혼사를 거부하는 것은 황명을 거역하는 것이니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중죄였다.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설은비가 이미 선택을 한 이상, 이 혼사는 설은영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설은영은 자신의 거처인 망서관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설은영의 마음 속에 있던 원한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측실 추씨, 시랑 설충의 유일한 첩실이자, 명의 상으로는 설은영의 어머니였다.

아주 오래전, 추 측실은 아이를 바꿔치기하였다. 그리하여 본래는 설 시랑의 적장녀였어야 할 설은영은 모두가 무시하는 서녀가 되었다.

전생에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설은영은 온갖 분노와 원한을 안고 죽었고, 회귀했다.

다시 인생을 살 기휘가 생겼으니 전생의 모든 원한을 씻어내고 복수하리다!

‘전생에 나를 짓밟았던 인간들, 누구든 용서치 않아!’

오직 원수의 흐르는 피만이 그녀의 증오를 씻어낼 수 있었다.

“어찌 오셨습니까, 어머니.”

그녀는 추 이랑의 맞은편으로 다가가 앉았다. 시녀 취아가 다가와 그녀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르고 조용히 뒤로 물러갔다.

추 이랑은 경멸에 찬 눈길로 취아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진국공부에 시집을 간다고 감히 너 따위가 이젠 이 어미도 안중에 두지 않겠다는 것이냐?”

추 이랑은 아무도 모르게 두 아이의 신분을 바꿔치기하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러니 설은영이 진국공부로 시집을 간다 한들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은영은 더 이상 그녀의 앞에서 떨기만 하던 나약한 서녀가 아니었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상서 최진겸의 부인으로서 몇 년을 살았고 황궁에 출입하였으며 수많은 귀족가의 안주인들과 교류했다.

일개 첩실 따위는 더 이상 그녀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진국공은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불구이고 자식을 볼 수도 없는 몸입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희열에 찬 추 이랑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우스울 수 없었다.

그녀가 비참해질수록 눈앞의 여인은 행복한 것 같았다.

설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도 평생 독수공방 신세를 면치 못할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더 깔끔할지도요.”

추 이랑의 눈빛에 광기의 웃음이 서렸다.

‘제 발로 죽겠다고? 이런 횡재가?’

그녀는 치솟는 희열을 억제하며 코웃음 쳤다.

“죽겠다는 애를 내가 무슨 수로 말리니? 밖에 우물이 있더라. 판단은 네 몫이지.”

말을 마친 그녀는 손수건을 챙겨 일어났다.

추 이랑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찔한 통곡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둘째 아씨가 우물에 빠졌어요! 어서 와서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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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쓸 운명   제30화

    깊은 밤, 설은영은 정자에 앉아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그녀의 앞에는 화로가 타고 있고 그 위에 올려진 단지에서는 감미로운 향기가 퍼져 나왔다.그녀는 느긋하니 의자에 기댄 채, 술잔을 들며 호수 속 물고기들을 감상했다.“아씨, 곧 있게 될 성인식에서 아씨를 위한 격식이 그분보다 높을 것 같습니다.”취아가 술안주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때 아씨의 신분을 사람들에게 밝히려고 그러는지도 몰라요.”설은영은 말없이 술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취기가 오른 그녀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취아는 그녀가 답이 없자 계속해서 말했다.“그분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오후가 되어 청람원에서는 수많은 물건들을 보내왔다. 텅텅 비었던 망서관은 하루사이에 화려하게 바뀌었다.바람이 불어와 주변의 수풀이 흔들리며 스산한 소리가 났다.“그분의 성인식은 곧 치러질 것이고 혼수는 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하네요. 처소에서 누군가 벌을 받았다는 말도 있고요.”취아는 꿀물을 타서 설은영의 앞으로 건넸다.“밤바람이 차니 술은 적당히 마시는 게 좋겠어요, 아씨.”설은영이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취아는 차마 마시지 말라고 말릴 수 없었다.오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속이 많이 불편할 것이다. 마음 착한 아씨는 주변 시종들에게 진심으로 잘해주었고 한 번도 그들에게 매를 들거나 욕을 한 적이 없었다.그러니 술로 마음을 달래는 것은 그녀가 유일하게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설은영은 취아가 건넨 꿀물잔을 밀어놓고는 초점 없는 눈길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어떻게 하면 강씨 부인에게 아침 문안을 가지 않을지 생각하고 있었다.예전에는 안 가도 절대 신경을 안 쓸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취아는 계속해서 저택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지만 정작 설은영은 조용히 있고 싶었다.“여긴 내일 치우고 너는 먼저 들어가서 쉬렴.”취아는 뭐라고 하려다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다음 날, 아침.“아침은 먹었니?”강

  • 다시 쓸 운명   제29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언니만 원한다면 저는 바꿔줄 의향이 있어요.”그녀는 이번 생의 설은비가 절대 연준을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이 도박에서 승리한다면 그녀는 진국공부의 힘을 빌려 최진겸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었다.만약 도박에서 진다면 그대로 혼례를 치르고 신혼밤에 그와 함께 자결하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다.설은비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그녀는 기대에 찬 추 이랑의 표정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너와 진국공은 폐하께서 정해주신 혼약이야. 신부가 바뀌었다는 것이 들통난다면 우리 가문은 멸문에 처할지도 모르지.”전생에 연준의 잔혹함을 몸소 체험한 그녀가 다시 그 선택을 할 리 없었다.혼인이 아니라 연준의 이름만 들어도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추 이랑의 희망의 불씨는 그렇게 꺼졌다.설은영은 사람들을 등지고 문밖으로 향했다.“이제 진실이 밝혀졌고 먼저 태어난 것은 나이니, 더 이상 날 동생으로 대하지 말아 줬으면 해.”설은비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언니라고 부르기 싫다면 앞으로 서로 이름을 불러도 좋아.”말을 마친 그녀는 당당하게 밖으로 나갔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주가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여 자리를 떴다.진주는 설은영의 표정을 보고 안의 상황의 어땠을지 대략 짐작이 갔다.그녀는 몰래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어리석은 사람들, 아씨가 빨리 시집을 가시는 게 더 나을 수 있겠어.’타인의 냉대와 가족의 무관심 중에 어느 쪽이 더 아플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진국공부로 시집을 가는 게 나았다.한편, 강씨는 한참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그녀는 친딸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자신이 왜 조금 전에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곱게 키운 설은비가 설은영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설민준!”자리에서 일어선 강씨는 성난 얼굴로 설민준

  • 다시 쓸 운명   제28화

    설은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전생에 겪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은 그녀의 공감 능력을 소실되게 만들었다.그리고 강씨 부인에게서는 기대했던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다만 추 이랑이 자신을 속였다는 굴욕감만 있을 뿐이었다.만약 지금 강씨 부인에게 선택지를 준다면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이는 설은비를 택할 것이다.추 이랑의 죽음을 선고하면서도 양녀를 포기한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은 강씨 부인이었다.15년을 쌓아온 모녀의 정이 한순간에 무너질 리가 없었다.설민준은 이 순간에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울고 있는 설은비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아버지인 설 시랑은 이 시국에 나서기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은영아, 넌 따로 하고 싶은 말 없니?”그는 설은영에게 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설은영에게로 향했다.추 이랑은 아무 말없이 애원의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고 설은비는 그녀의 앞으로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다.강씨가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을 보고 설은영은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난 아픔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그녀의 감정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마비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제발 추 이랑 좀 살려줘.”“비록…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지난 15년간 네 어머니였잖아.”“내가 그동안 너에게 속했던 것을 빼앗은 걸 인정할게. 하지만 너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난 한 번도 널 괴롭힌 적이 없어. 비록 자매의 정은 옅을지라도, 적어도 원한을 진 적은….”“은영아, 제발.”그녀는 설은영의 손을 꽉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설은영은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충과 불쾌한 얼굴의 설민준, 그리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안쓰러움을 숨기고 있는 강씨 부인,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추 이랑.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설은영은 놀란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손을 휘휘 저었다.

  • 다시 쓸 운명   제27화

    그녀는 분노한 눈길로 두 남매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남매지간에 사이가 참으로 좋구나.”설민준은 싸늘해진 어머니의 눈빛에 당황했다.그는 자신이 뭘 잘못해서 어머니가 이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강씨 부인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동안 은영이가 이 집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희가 잘 알겠지. 우리야 아이가 바뀐 걸 몰라서 그랬다지만, 추 이랑은!”그녀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추 이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이 모든 일의 범인인 저 여자의 행동은 어찌 설명할 거지? 내 딸을 바꿔치기하고 온갖 악랄한 말로 목욕하고 박대를 하였다.”강씨는 추 이랑의 앞으로 다가가 강제로 턱을 들어 올렸다.“넌 아주 의기양양했겠지.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모든 걸 지배하는 느낌이었겠지.”강씨는 추 이랑을 내친 후에 바깥을 바라보았다.나무가 우거지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내가 친히 널 벌하지는 않을 것이다.”강씨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녀는 추 이랑의 눈빛에 스친 환희의 감정을 보고는 피식 냉소를 지었다.“네가 가야 할 곳은 경조부 감옥일 테지.”추 이랑은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설충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가련하게 고개를 저었다.“나으리, 제가 그때는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일부러 악의를 품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발 저를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나으리….”조금 전까지 어떤 벌이든 혼자 짊어지겠다던 여인이 울며 불며 애원하고 있으니, 강씨는 상실감이 들었다.이렇게 어리석은 여인에게 15년을 속았다니.“애원해도 소용없어.”상석으로 돌아간 강씨는 설은영의 손을 잡고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딸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아야 했다.“폐하께서 내 딸과 진국공의 혼사를 정해주셨다. 내 딸은 앞으로 진국공 부인이 될 사람이지.”“경조부윤의 엄 대인의 조부는 폐하의 스승이고 폐하께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지. 엄 대인은 이 일을 엄폐할 수 없을 거라고

  • 다시 쓸 운명   제26화

    설민준은 애써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그가 기억하는 설은영은 나약하고 겁이 많으며 생기가 없는 모습이었다.용모에 대해 거의 기억에 남은 게 없었다.저택의 하인들마저 투명인간 취급을 했으니 제대로 그 아이를 눈여겨본 사람이 없는 게 정상이었다.설씨 가문에서 그녀를 신경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단 한명이라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었다면 시종들이 그런 태도로 그녀를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설은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예를 행했다.“오라버니를 뵙습니다.”예를 행하는 그녀의 자태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모습이 설민준에게는 너무 낯설고 심지어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남매끼리 그리 격실 차릴 필요 없다.”어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가 자신에게 예를 행하니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설은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 순간 설민준은 이런 동생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남매 사이의 분위기가 점점 화기애애해지자, 설은비는 조바심이 났다.강씨는 이미 설은영에게 마음이 기울었고 아버지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만약 오라버니인 설민준마저 설은영에게 기운다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오라버니….”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설민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그래, 은비야.”그는 설은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강씨에게 말했다.“어머니, 은비는 무고하니 이 무거운 책임을 은비에게 떠넘기는 건 불합리합니다.”추 이랑은 그 말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기대를 가득 품고 설충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으리, 부인, 이 모든 건 제 잘못이고 큰 아씨는 무고합니다. 벌하실 거면 저만 벌하여 주십시오.”쾅!강씨가 찻잔을 힘껏 탁자에 내려놓았다.설은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강씨를 바라보았다.“벌이라 하였느냐?”강씨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무고하다는 말로 내 15년의 굴욕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녀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추 이랑을 노려보았다

  • 다시 쓸 운명   제25화

    너무도 닮아 있는 두 얼굴을 보고 설은비는 인정하기 싫어도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추 이랑이 그녀의 생모라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것이 사실은 설은영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강씨는 담담한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들이 원치 않아도 바뀌는 건 없었다.추 이랑과 설은비는 너무도 닮아 있었다.강씨 부인은 곁눈질로 설충을 힐끗 보았다.그가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강씨 부인은 이미 그에게 원망이 생겨 버렸다.첩실을 향한 그의 편애가 추 이랑으로 하여금 이렇게 교활한 마음을 품게 만든 것이다.가장 무고한 피해자는 결국 그녀의 딸 설은영이었다.부인 강씨는 진국공과의 혼사가 떠올랐다.이틀 전까지 이 혼사가 못마땅했던 그녀였다.서녀가 자신의 딸보다 더 높은 집안에 시집간다는 이유에서였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사람과 사람간의 정도 정이지만 가문의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앞으로 내 개인 예산에서 나가는 부분은 모두 망서관으로 보내게.”강씨는 추 이랑과 설은비의 경악한 표정을 무시한 채, 임씨 어멈에게 말했다.그녀는 경악한 추 이랑과 설은비의 표정을 무시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설은영을 바라봤다.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이 얼굴을 봐서라도 강씨는 이 아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처소를 바꾸는 게 좋지 않겠니?”설은영은 생각지도 못한 강씨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을 본 강씨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망서관은 내가 있는 청람원과 거리가 좀 멀어서….”설은영은 감격 어린 눈길로 강씨를 바라보며 말했다.“감사해요, 어머니. 다만 저는 곧 혼인을 하게 될 테니….”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명확했다.이사하는 것도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일이고 거처를 옮긴다고 해도 며칠 있지도 못할 테니 괜찮다는 뜻이었다.그 말을 들은 강씨는 고개를 돌려 추 이랑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에는 무한한 증오와 원한이 담겨 있었다.그동안 딸을 학대한 추 이랑에 대한 분노였다.적절한 때에 설민준이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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