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결혼 4주년 기념일, 나는 집에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시각 강도윤은 첫사랑을 위해 온 도시를 수놓을 만큼 화려한 불꽃놀이를 벌였다. 나는 폭죽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갔다. 검게 타들어 간 내 상처를 본 강도윤은 첫사랑이 병실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으며 차갑게 말했다. “보지 마. 눈 버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 세탁기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스타킹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담담히 꺼내 반듯하게 개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탁기 뚜껑을 닫은 뒤 런던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더 보기나는 런던에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아래층에 앉아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렸다.해영시에서 나를 찾아온 옛 동료였다.당시 나와 강도윤의 이혼 소동이 워낙 크게 알려져 거의 모든 회사 직원들이 우리 집 주소를 알게 되었다.뜻밖에도 밖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도 몇 사람이 서 있었다.자세히 보니 모두 예전에 함께 일하던 영업부 동료들이었다.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 강진 그룹은 이끌 사람이 없어 조유나가 경영을 맡고 있다고 했다.그러자 주요 거래처 담당자들이 잇따라 불만을 제기했다.특히 내가 퇴사 직전 보드카 6병을 마시고 계약을 따냈던 상공회의소 쪽이 문제였다.조유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미 투자를 철회하고 새 협력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강진 그룹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동료들은 내가 새로운 회사를 찾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길 바라며 찾아온 것이었다.강도윤과 내 싸움으로 동료들의 생계에도 영향이 간 셈이다.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다시 해영시로 향했다.해영시에 돌아온 다음 날, 강진 그룹은 최근의 경영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기로 되어 있었다.나는 호텔에서 화장하고 립스틱을 바른 뒤 예전에 출근할 때 입던 정장을 걸쳤다.직원 대부분이 나를 알아보는 덕분에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기자회견이 열리는 홀까지 들어갔다.그때 조유나는 기자들과 개인 투자자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나를 발견한 조유나의 얼굴이 더욱 당황한 기색으로 굳었다. 조유나가 경비원에게 나를 내쫓으라고 손짓했다.하지만 경비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조유나보다 이 회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훨씬 잘 알고 있었다.나는 팔짱을 낀 채 단상으로 올라갔다.그사이 경비원들이 조유나를 단상 아래로 끌어 내렸다.조유나는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경비원들이 단단히 붙잡았다.나는 목을 가다듬었다.“여러분, 잠깐만요.”순식간에 시끄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오랜
재판이 끝나자 강도윤이 내 앞을 막아섰다.강도윤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예전에 내가 널 구해 준 걸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줘.”옆에 있던 조유나도 거들었다.“이주 언니, 도윤 오빠가 판사님께 어머님이 재산을 빼돌린 흔적을 찾아 드리지 않았으면 2심이 그렇게 빨리 열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언니가 재산을 나눠 받기도 힘들었을 거고요.”“도윤 오빠는 언니 없이 못 살아요. 그러니까 우리 좀 용서해 주세요.”“그렇다고 저도 도윤 오빠를 포기할 순 없어요. 정 안 되면 우리 둘이 한 남자를 함께 사랑해도 되잖아요.”나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조유나의 황당한 제안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나는 두 사람에게 법원 안쪽의 그늘진 곳으로 가자는 눈짓을 했다.두 사람은 나를 설득했다고 생각했는지 기뻐하며 따라왔다.걸음을 멈춘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나는 들고 있던 서류철을 들어 조유나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짝!조유나의 뺨에 커다란 붉은 자국이 남았다.조유나는 놀라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내 정신을 차린 조유나가 강도윤의 소매를 붙잡고 울먹였다.“도윤 오빠, 빨리 대신 때려 줘!”그러고는 나를 때리는 시늉을 했지만 제대로 힘을 주지도 않았다. 나는 가볍게 그 손을 막았다.강도윤의 동정심을 자극해 자기 대신 화를 내게 하려는 속셈이 빤했다.하지만 뜻밖에도 강도윤은 내 앞을 가로막고 조유나가 휘두르려는 손을 붙잡았다.“이주한테 더는 상처 주지 마.”“다 너 때문이야. 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내가 이주를 소중히 여기지도 못하고 사람답게 살지도 못했어.”“이제부터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강도윤은 조유나를 쫓아낸 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나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고 생각했는지 강도윤의 눈에 기대가 가득 찼다.하지만 나는 차갑게 말했다.“남자가 무릎을 그렇게 쉽게 꿇는 거 아니야. 네가 무릎을 꿇는 순간, 너한
한적한 카페에서, 나와 강도윤은 마주 앉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깊은 골자기가 놓인 것 같았다.직원이 주문한 커피와 빵을 모두 내왔다.한참 만에 강도윤이 침묵을 깼다.“유나 때문에 날 떠나려는 거라면 유나를 내보낼게.”강도윤이 지갑을 꺼냈다. 안에는 강도윤과 조유나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사진 속 조유나는 대학생처럼 보였지만 배가 살짝 불러 있었다.강도윤이 무너질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릴 땐 철이 없었어. 유나가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내가 임신시켰거든.”“그대로 결혼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이 몰락해서 어머니가 반대하셨어. 다른 유력한 가문과 혼인해서 데릴사위로 들어가길 바라셨지.”강도윤이 고개를 떨궜다.“어머니는 강제로 유나가 유산하게 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셨어.”강도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한참 후에야 말을 이었다.“내가 유나한테 잘못했어. 그래서 돌아온 뒤로 계속 보상해 주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그러는 동안 너한테 상처를 줄 줄은 몰랐어.”강도윤이 휴대전화를 들어 집 안의 CCTV 영상을 재생했다.“네가 입원해 있을 때 유나가 몸이 약해졌다면서 우리 집에 와서 지냈어. 내 아이를 한 번 더 낳게 해 주면 날 떠나겠다고 하더라.”강도윤은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유혹을 참았어. 결국 유나를 내쫓았어.”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였다.나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도윤에게 휴대전화 시간을 보여 주었다.“나 이제 집에 가야 해. 조유나한테 어떻게 하든 그건 네 일이야.”“너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 없어. 하지만 네가 나한테 상처를 줬으니 우리는 헤어지는 게 맞아.”내 단호한 말을 들은 강도윤의 표정이 달라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얼굴에 독기가 서렸다.“나 떠나고 후회하지 마. 우리 집안의 지원 없이 네가 어떻게 살지 두고 보겠어.”마치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모습이었다.강도윤은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법원에서 보낸 소환장을 받은 강도윤이 의심 가득한 문자를 보냈다.[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야?]나는 답하지 않았다.며칠 뒤부터 강도윤은 미친 사람처럼 연락을 퍼부으며 프로젝트를 계속 맡아 달라고 했다.나는 딱 한 마디만 답했다.[이미 퇴사했어.]그리고 강도윤과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차단했다.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전화해서 울먹였다.“이주 씨, 제발 돌아와 주세요. 강 대표님이 미친 듯이 이주 씨를 찾고 있어요.”“저희가 못 찾아내면 이번 달 월급을 전부 깎겠다고 협박까지 하셨어요.”기가 막혔다.“그럼 여러분이 나한테 오세요.”나는 집에 딸린 민박집을 바라보며 말했다.“여긴 숙식 다 제공해 드릴 수 있어요. 월급도 제가 드릴게요.”강씨 가문에서 7년 동안 일한 덕에 나 역시 어느 정도 인맥과 자본을 모을 수 있었다.강도윤과 내 갈등 때문에 평범한 직원들이 계속 피해를 보게 된 데는 내 책임도 있었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동료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전화를 끊었다.보름쯤 지나서야 강도윤은 내가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강도윤은 런던으로 날아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나는 문 앞에 선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평소 내 부모님과 가족에게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이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을까?“여긴 어떻게 찾아왔어?”강도윤이 대답했다.“넌 내 아내잖아. 우리 마음은 통하니까.”그의 낯간지러운 말에 나는 속이 다 울렁거렸다.강도윤은 내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더니 다정한 척 말했다.“자기야, 이제 화 풀고 나랑 돌아가자.”나는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나 너랑 이혼할 거야. 법원에서 보낸 소환장 못 봤어?”우리가 실랑이하는 소리에 이웃들이 깨어났다.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창문이 열렸다. 이웃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었다.나는 더는 망신당하기 싫어 그를 끌고 집 근처 카페로 갔다.강도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요즘 더 예뻐졌네. 회사에서 너무 무리했나 봐. 내가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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