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린이날, 가장 화제가 된 SNS는 나에 관한 글이었다. [고 대표가 아들과 함께 첫사랑의 생일을 챙겼다는데, 드디어 여민지와 이혼하려는 건가?] 나는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결혼기념일을 위해 준비해 둔 풍선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보.]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아들이 갑자기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써서 내가...] 핸드폰 벨 소리 너머로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 이모가 오늘 밤 나랑 같이 잘 수 있대!] 나는 엉망이 된 집 안을 바라보았다. 풍선은 힘없이 축 처져 있었고, 케이크 위의 크림은 이미 굳어 있었다. “나한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무슨 일인지 다 알아.” 고지훈 당신과 아들은 여기까지야, 이제 나한테 당신들 필요 없어.
View More“그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그 좋았던 기억들까지 정말 다 잊은 거야?”나는 조용히 손을 빼고, 캠 강 위에 떨어지는 마른 잎을 바라보았다.“기억해. 기억하기 때문에 당신이 나를 몇 번이고 상처 입힐 때마다 나도 몇 번이고 기회를 줬던 거야.”“하지만 당신은 이제야 깨달았잖아.”“고지훈, 너무 늦었어.”“이 낙엽처럼.”나는 손바닥을 펼쳐 바람에 날려온 누렇게 마른 잎사귀 하나를 받아냈다.“다시 나뭇가지에 붙여놓는다고 해도... 이미 떨어진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아.”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저 멀리 캠 강 위로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알고 있어?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지난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어.”“나는 더 이상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니었어.”“그저 나 자신일 뿐이야.”“그리고 이제야 알게 됐어. 사랑은 한쪽이 비굴하게 희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거라는 걸.”고지훈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러니까...”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고지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우린 여기까지야.”그 말을 끝으로 나는 사람들 사이로 몸을 돌려서 걸어갔다.그리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등 뒤에서 천희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엄마!”가슴이 세차게 흔들렸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어떤 상처는 아무리 애써도 되돌릴 수 없다.어떤 균열은 아무리 꿰매도 다시 붙지 않는다.그리고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지훈은 천희를 데리고 영국으로 이사 왔다.두 사람은 내 삶을 방해하지 않았지만, 매년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조용히 선물 하나를 보내왔다.어떤 때는 손수 만든 쿠키 한 상자였다.포장지에는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어떤 때는 건축 잡지 한 권이었다.그 안에는 케임브리지의 여러 칼리지 앞에서 찍은 두 부자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대체 무슨 뜻이야? 그 여자 때문에 나랑 끝내겠다는 거야?][2021.09.16 08:12][전화 좀 받아!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지 알아?][2021.09.17 14:35][고지훈! 여민지가 너를 다시 용서할 것 같아? 지금쯤이면 널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걸!][2021.10.01 09:05][오늘 네 생일이잖아. 작년에 우리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 나 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릴게.][2022.01.01 00:03][새해 복 많이 받아... 너무 보고 싶어.][2022.03.08 15:22][마지막으로 한 번만 물어볼게. 나 안 만날 거야?][2022.05.20 13:14][너 후회할 거야! 대체 여민지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걔는 주방만 맴도는 전업주부일 뿐이잖아!][2022.07.30 22:08][제발... 한마디만 답해주면 안 될까?]마지막으로 ‘읽음’ 표시가 남은 메시지는 2년 전 고지훈이 보낸 이별 통보였다.그 뒤로 임해연이 보낸 모든 메시지에는 선명한 붉은색의 ‘읽지 않음’표시가 남아 있었다.시간은 728일 전에서 멈춰 있었다.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휴대폰을 닫아 고지훈에게 돌려줬다.“고지훈.”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고지훈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무언가에 찔린 사람처럼 얼굴이 일그러지고, 목소리가 떨렸다.“중요하지 않다고?”“지난 2년 동안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나는 정말 오래전에 임해연과 완전히 끝냈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지난 2년 동안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인정할게. 내가 잘못했어.”“예전에는 임해연 때문에 널 홀대했고, 심지어 네가 하는 일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한때는 네 직업을 무시하기까지 했어.”고지훈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리고 강인호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내가 그 사람들이 너를 함부로 대하도록 내버려뒀어. 모임만 하면 너를 난처하게 만들었는데도 그냥
[여민지, 나를 떠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지금이라도 당장 돌아와. 그러면 용서해 줄게!]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고지훈의 말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아들이 매일 울면서 너를 찾고 있어.][임해연의 일은 내가 설명할 수 있어. 돌아와. 우리 둘이 차분하게 이야기하자...]그러더니 나중에는 메시지에 애원하는 기색까지 묻어나기 시작했다.[내가 잘못했어... 정말 내가 잘못했어.][돌아와 주면 안 될까? 나랑 천희는 네가 없으면 안 돼.]나는 그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예전에 내가 병원에 누워 혼자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때, 고지훈은 단 한 마디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수없이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자신과 아들의 입맛에 맞는 아침을 차려주었을 때도, 고지훈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그런데 이제야 고지훈이 깨달은 것이다.내가 고지훈을 떠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그가 나 없이는 살 수 없었다는 걸.나는 그 어떤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가락을 움직였다.그리고 딱 한 문장만 보냈다.[당신 서재 서랍에 내가 서명해 둔 이혼 합의서가 있어. 당신도 서명해.]그 말을 끝으로 나는 고지훈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고지훈은 완전히 미쳐버렸다.내게 연락할 수 없게 되자 고지훈은 내 동급생과 지도교수에게까지 집요하게 연락하기 시작했다.심지어 학교 행정실에까지 전화를 걸어 악을 쓰며 따져 물었다.[여민지가 어디 있는지 말해!]Martin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내밀었다.화면에는 모르는 번호로 온 영어로 쓴 문자 한 통이 떠 있었다.[Professor, please tell Minji that her husband and son are waiting for her. Family is the most importa
고지훈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수상 증서 아래에 깔려 있던 항공권 예약 내역을 발견했다.[여민지/ 런던 히드로 공항/ 편도]발권일은 석 달 전이었다.고지훈의 숨이 갑자기 턱 막혔다.석 달 전, 바로 고지훈이 처음으로 임해연을 집에 데려와 함께 식사했던 날이었다.그날 여민지는 평소와 달리 저녁을 차리지 않고 야근한다고 했다.당시 고지훈은 오히려 여민지를 비웃었다.“그깟 직장에서 야근한다고 뭐가 달라져?”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날 밤 여민지에게서는 은은한 커피 향이 났던 것 같았다.여민지는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커피를 마시면 손이 떨려 설계 도면을 그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했었다.“아빠...”천희는 여전히 훌쩍이며 물었다.“엄마가 우리를 버린 거야?”“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고지훈은 갑자기 아들을 끌어당겼다가, 아이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힘을 빼고 아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고지훈은 쪼그려 앉아 갑자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천희야,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잖아. 엄마가 너 입히려고 곰돌이 스웨터도 사흘 밤을 꼬박 새워가며 뜨개질했잖아.”말을 이어가던 고지훈의 목소리가 갑자기 잠겼다.그 스웨터는 지난주 임해연이 ‘실수로’ 커피를 쏟았던 옷이었다.그때 여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스웨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을 뿐이었다.창밖으로 해 질 녘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고지훈은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17번째로 눌렀다.기계음은 여전히 정중한 안내 멘트를 반복했다.[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뭘 잘난 척해!”고지훈은 화가 난 듯 휴대폰을 소파에 내던졌다.그런데 순간 화면이 다시 켜졌다.여민지의 SNS에 위치가 업데이트되었다.[런던·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칼리지]사진 속에는 석양에 물든 캠 강이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그 앞에는 펜을 쥔 가느다란 손목이 보였다.그런데 그 손목에 있어야 할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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