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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탑의 수학자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31 - チャプター 40

86 チャプター

31화. 모퉁이를 도는 빛

도서관 지하 서고에는 불을 들고 들어갈 수 없었다.입구 돌문에 쇠판이 박혀 있었다. 글씨가 닳아 반쯤 지워졌지만 뜻은 알 수 있었다. 불을 들고 들어가는 자는 다시 나오지 못한다.“겁주려고 쓴 말이 아닐세. 아니, 이제는 겁주려고 쓴 말이지.”사서 오드리크가 속삭였다. 도서관에서는 누구나 속삭여야 했다. 오드리크는 도서관 밖에서도 속삭였다. 사십 년을 그렇게 말했더니 목이 그렇게 굳었다고 했다.일흔 가까운 사람이었다. 등이 둥글게 굽었다. 흰 머리가 성겼고, 손가락이 길었다. 손끝마다 먹이 배어 지워지지 않았다.“백이십 년 전에 등불 하나가 넘어졌네. 양피지 선반 셋이 탔지. 그 뒤로 서고엔 불이 없네. 촛불도, 등잔도, 라이트도.”“라이트도요.”“라이트는 뜨겁잖나. 번쩍이고. 양피지는 열에 약해. 오래 비추면 글씨가 바래네.”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이 세계 라이트는 빛과 함께 열을 흘렸다.“그럼 책은 어떻게 찾으십니까.”“한낮에.”오드리크가 계단을 가리켰다.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두 번 꺾였다. 첫 꺾임 위, 땅 위 계단참에 좁은 창이 하나 있었다. 한낮 해가 높이 뜨면 그 창으로 빛이 한 줄기 들어와 계단참 바닥에 네모를 그렸다. 빛은 거기까지였다. 첫 꺾임을 돌면 어두웠다. 둘째 꺾임을 돌면 캄캄했다.“한낮이면 서고에서 책을 안고 올라와 계단참 빛에서 제목을 읽네. 찾던 책이면 가지고 가고, 아니면 도로 내려가지. 여름엔 한낮이 길어 하루에 스무 번은 오르내리네. 겨울엔….”오드리크가 창을 올려다보았다. 초겨울이었다. 해가 낮았다. 계단참 네모가 벽 쪽으로 기울어 반쯤만 바닥에 닿았다.“겨울엔 다섯 번이 고작일세.”*루엔이 서고를 찾은 까닭은 오스윈의 영창책이었다.첫 장 영창 여덟 줄. 여백에 「틀렸을지도 모름」이 세 군데 있었다. 확인하려면 탑의 옛 영창 기록과 맞대 봐야 했다. 그 기록이 지하 서고 둘째 칸 선반에 있다고 했다. 여든 권 넘게.한 권씩 안고 계단참까지 올라와 빛에 대 보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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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시작합니다

봄 겨루기 날은 학교에서 가장 시끄러운 날이었다.눈이 녹고 실습장 풀이 다시 파래지면, 온 학교가 서쪽 비탈에 모였다. 신입생도, 윗반도, 교관들도. 둥글게 모래를 깐 겨루기 판 둘레에 사람이 몇 겹으로 섰다. 단 위에는 교장이 앉았다.규칙은 간단했다. 두 사람이 가슴에 손바닥만 한 밀랍 판을 단다. 먼저 상대의 밀랍 판을 깨는 쪽이 이긴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마법은 안 된다. 심판이 멈추라면 멈춘다.신입생은 대개 제비로 짝을 뽑았다.디트마르 페르난은 제비를 뽑지 않았다. 겨루기 판 한가운데 서서 신입생 줄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루엔 하르트.”웅성거림이 한 바퀴 돌았다. 겨울 동안 디트마르가 셋째 고리를 닫았다는 소문은 다들 들었다. 그릇 스물다섯에 고리 셋. 그 손가락 끝에 선 건 그릇 아홉짜리였다.심판 뵈르너가 루엔을 보았다. 받겠느냐는 눈이었다.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겨루기 판으로 나가기 직전, 테오가 루엔 소매를 잡았다.“몇까지 셌어?”루엔이 테오를 보았다. 입술이 멈췄다.겨울 동안 테오는 알아냈다. 루엔이 밤에 벽을 보고 입술만 움직이는 날이 있다는 걸. 그게 소수라는 걸. 많이 셀수록 속이 시끄럽다는 걸. 루엔이 가르쳐 준 적은 없었다. 테오가 세어서 알아낸 것이었다.“이백열하나.”“그럼 꽤 떨리는구나.”테오가 소매를 놓았다. 그러고는 루엔 가슴의 밀랍 판을 한 번 톡 쳤다.“이백열하나면 어제 저녁 식당에서보다 많아. 식당에선 백을 안 넘었거든. 식당 아주머니가 국자 들고 지나갈 때.”“국자는 예측이 됩니다.”“디트마르는 안 돼?”“디트마르 님은 아직 한 번도 제 앞에서 셋째 고리를 쓰신 적이 없습니다. 재 본 적이 없는 건 예측이 안 됩니다.”테오가 웃었다. 그러고는 등을 떠밀었다.“재 보고 와.”*모래판 가장자리를 지나는데 윗반 학생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은화와 동화가 손에서 손으로 오갔다.“페르난 쪽에 열 걸고 아홉짜리 쪽에 하나.”“그것도 후하게 쳐준 거야.”그 무리 한쪽에 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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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빛을 먹는 돌

소문은 학교 담을 넘었다.겨루기 날로부터 열흘 뒤, 테오가 장터에서 돌아와 말했다.“빵 사는데 빵집 아저씨가 묻더라. 그 말 없이 불 끄는 애가 너희 학교냐고.”“불을 끈 적은 없습니다.”“불덩이를 미끄러뜨렸잖아.”“미끄러진 불은 저쪽에서 터졌습니다. 꺼진 게 아닙니다.”“아저씨한텐 그렇다고 했어. 그랬더니 아저씨가 그럼 더 무섭다고.”루엔은 수첩에 적었다. 소문이 번지는 동안 붙은 말: 불을 끈다. 붙은 까닭: 모름.말은 셀수록 늘었다. 무영창 소년. 빛을 먹는 아이. 말 한마디로 파이어볼을 돌려보낸 아이. 사일런스를 먹는 아이. 루엔은 그것들을 들어온 날짜와 함께 적었다. 날마다 한두 줄씩 늘었다. 하나도 루엔이 한 말은 아니었다.*복도에서 교관 둘이 루엔을 불러 세웠다.윗반 영창 실습을 맡은 교관들이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 사람은 턱수염이 있었다. 둘 다 얼굴이 딱딱했다.“주머니를 비워라.”“무엇을 찾으십니까.”“빛을 먹는 돌.” 턱수염 교관이 말했다. “마법을 쓰면 빛이 나는 게 이치다. 빛이 안 난다면 누가 빛을 먹었다는 거지. 남쪽 어디서 그런 돌을 판다는 소문이 있다.”루엔은 잠깐 그 말을 셈했다. 이치에 안 맞는 말은 아니었다. 빛이 나야 하는데 안 난다면, 무언가 먹었다고 보는 게 교관들이 아는 세상에선 가장 가까운 답이었다.루엔은 주머니를 비웠다.분필 한 토막. 세 칸 계량 숟가락. 1동화짜리 영수증 한 묶음. 끈으로 묶었는데 손가락 두 마디 두께였다. 그리고 가죽 돈주머니.키 큰 교관이 계량 숟가락을 들었다. 세 칸의 작은 숟가락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이건.”“소금이랑 설탕을 잽니다.”“왜.”“아프면 물에 타서 먹습니다. 비율이 틀리면 안 됩니다.”교관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턱수염 교관이 영수증 묶음을 풀었다. 한 장씩 넘겼다. 빵 한 덩이, 동화 한 닢. 초 두 자루, 동화 두 닢. 분필 한 상자, 동화 세 닢. 장마다 날짜, 물건, 값, 그리고 가게 주인의 도장이나 손도장.넘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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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사십 년의 보정표

헤일로크 교수는 원을 눈으로 쟀다.영창학 실습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원진이 스무 개 넘게 새겨져 있었다. 돌바닥에 끌로 판 홈이었다. 몇십 년 동안 학생들이 그 위에서 영창을 연습해, 홈 가장자리가 반들반들했다.교수는 그 가운데 큰 원 하나 앞에 섰다.몸집이 컸다. 배가 둥글게 나왔고, 손이 두툼했다. 손바닥 가운데에 끌 자루에 눌린 굳은살이 있었다. 예순이 넘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사십 년을 가르쳤다. 목소리는 굵고 느렸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영창처럼 끊어서 말했다.“이 원진. 지름은 스물다섯 뼘. 둘레는.”교수가 원을 한 번 훑어보았다. 끈도 막대도 없이.“일흔일곱 뼘.”학생들이 받아 적었다. 루엔도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제 값을 적었다.일흔여덟 뼘 하고 반이 조금 넘음.한 뼘 반 차이였다. 둘레 전체로 치면 백분의 이쯤.루엔은 고개를 들어 교수를 보았다. 교수는 벌써 다음 원 앞에 서 있었다.“이건 열두 뼘. 둘레는 서른일곱 뼘 하고 세 마디.”루엔은 셈했다. 서른일곱 뼘 하고 세 마디. 맞았다. 끝자리까지.다음 원. 맞았다. 그다음. 맞았다.아홉 개를 말하는 동안 여덟 개가 루엔 값과 끝자리까지 같았다. 하나만 백분의 이가 틀렸다. 첫 번째 원이었다.*수업이 끝나고 루엔은 교수 앞으로 갔다.“여쭤볼 것이 있습니다.”“말하게.”“원을 어떻게 재셨습니까. 끈도 없이.”교수가 루엔을 내려다보았다. 무영창 소년이라는 소문은 교수도 들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얼굴에 경계가 없었다. 물어보러 온 학생을 보는 얼굴이었다.“안 쟀네.”교수가 교탁 서랍을 열었다. 두꺼운 양피지 묶음이 나왔다. 가장자리가 손때로 까맸다. 몇 번이나 다시 꿰맨 흔적이 있었다.“표일세.”펼치자 칸이 빼곡했다. 지름 한 뼘부터 예순 뼘까지. 칸마다 둘레가 적혀 있었다. 「세 배 하고 몇 마디」의 꼴로. 이 세계의 막대와 갈래 기호로.“사십 년 전에 처음 만들었지. 새로 원진을 새길 때마다 끈으로 둘레를 재서 적었네. 같은 지름을 여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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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달아난 번개

디트마르 페르난은 서고에서 속삭이는 법을 몰랐다.“하르트.”목소리가 지하 서고 돌 천장에 부딪혀 세 번 울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오드리크가 고개를 들었다.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댔다. 사십 년 서고를 지킨 손가락이었다.디트마르가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루엔이 앉은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발소리를 줄이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잘 되지 않았다. 키 큰 사람의 걸음은 돌바닥에서 컸다.루엔은 광로가 떨어뜨린 한낮 빛 아래서 옛 영창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늦봄이었다. 해가 높아 서고 책상 위 빛 동그라미가 겨울보다 컸다.디트마르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빛 동그라미를 한참 보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계단 쪽을 보았다. 쟁반 두 개가 번쩍이는 계단 쪽을.“이게 그거냐. 모퉁이를 도는 빛.”속삭였다. 억지로 낮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예.”“뜨겁지 않네.”“해가 오는 길에 쟁반에서 열이 조금씩 떨어집니다.”디트마르는 손을 빛 속에 넣었다 뺐다. 그러고는 손을 탁자 아래로 내렸다. 할 말을 고르는 사람의 손이었다.*“너 북부에서 번개를 땅에 박았다며.”루엔이 기록에서 눈을 들었다.“산적 습격 때. 쇠막대로. 라이트닝 볼트를 쏜 놈이 있었다고.”“있었습니다.”“그놈 이름 아냐.”“하겐 로스입니다.”디트마르가 멈췄다.“… 알고 있었냐.”“아홉 살 가을에 순회 마법사 셀빈 님께 들었습니다. 적색탑 전쟁 마법사단, 페르난 장로 부대에서 달아난 자라고. 습격 날엔 산적들이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겐, 번개가 휘어, 하고.”디트마르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그 페르난 장로가 우리 아버지다.”오드리크가 책장 넘기는 소리가 멈췄다. 곧 다시 이어졌다.“루프레히트 페르난. 적색탑 장로. 그때는 전쟁 마법사단장이었다.”디트마르는 그 이름을 말할 때 등을 곧게 폈다. 그러고는 금세 다시 숙였다.“입학하던 날 디트마르 님 성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수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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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한 주에 한 푼

식당 식비는 주마다 냈다.한 주에 동화 열두 닢. 은화로 치면 한 닢. 식당 문 옆 탁자에 두꺼운 장부가 있었다. 돈을 내면 식당 아주머니가 이름 옆에 막대와 갈래로 낸 만큼 적었다. 학생은 그 옆에 손도장을 찍었다.루엔은 돈을 낼 때마다 제 줄을 읽었다. 아주머니가 제대로 적었는지. 아주머니가 틀린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읽었다. 읽는 김에 위아래 줄도 눈에 들어왔다.테오 마일스. 루엔 바로 위 줄이었다.석 주 전: 막대 열하나. 옆에 작은 표시 하나. 외상.두 주 전: 막대 열하나. 외상.지난주: 막대 열하나. 외상.석 주째 한 닢씩 비었다.루엔은 제 줄에 손도장을 찍고 돌아섰다. 아주머니가 장부를 덮으며 말했다.“남의 줄은 왜 봐.”“제 줄 위에 있어서 보였습니다.”“보인 건 잊어버려.”“잊는 건 잘 못합니다.”아주머니가 국자로 장부를 톡 쳤다. 더 말하지 않았다.*그날 밤 루엔은 촛불을 켜 놓고 기다렸다. 테오가 지붕에서 내려와 창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밤이슬이 앉아 있었다.“식비가 석 주째 한 닢씩 비었습니다.”테오가 창틀에 걸터앉은 채 멈췄다.“… 남의 장부 보지 마.”“식당 아주머니도 그러셨습니다.”테오가 방으로 내려섰다. 침대에 앉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촛불이 한 마디쯤 탔다.“학비.”테오가 말했다.“봄 학기 학비가 모자랐어. 은화 스무 닢. 집에 편지 썼는데, 어머니가 보낸 게 반도 안 됐어. 아버지가 땅을 또 팔았대. 더 팔 땅이 없대.”테오 집안은 옛날엔 작은 영지가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때 반을 잃고 아버지 때 나머지를 잃었다. 남은 건 이름과, 옷깃에 실이 풀린 문장뿐이었다.“그래서 빌렸어. 언덕 아래 모리츠 칼브. 학생들한테 빌려주는 사람. 다들 알아.”“얼마에.”“이자는 없어. 교단이 금하잖아. 수수료만 받아.”테오가 손가락을 폈다.“한 주에 한 푼. 은화 두 닢마다 동화 한 닢. 스무 닢 빌렸으니까 한 주에 열 푼. 그거 내느라 식비가 한 닢씩 빈 거야.”테오가 웃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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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수수료라는 이름

교구청은 대성당 뒤편 낮은 돌집이었다.문을 열면 긴 방에 책상이 여럿. 사제복 입은 사람들이 서류를 넘기고 도장을 찍었다. 혼인, 장례, 땅 경계, 유언. 교단은 기도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 약속을 적어 두는 곳이기도 했다.앞 책상의 늙은 서기 사제는 루엔의 표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대금업자 계약? 교구 필경사 도장이 있으면 된 거다. 가서 갚아라.”“이자가 이름만 바뀐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같아서.” 서기 사제가 코웃음을 쳤다. “같아서 가져온 걸 다 봐 주면 교구청 문 닫는다.”그때 방 안쪽 책상에서 누가 일어섰다.“제가 보겠습니다.”젊은 사제였다. 스물 중반쯤. 마르고 얼굴이 창백했다. 밤색 머리를 짧게 깎았다. 흰 사제복이 백색탑 하급 사제의 것이었다.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서기 사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젊은 사제가 루엔 앞으로 왔다. 표를 받으려고 손을 뻗다가, 멈췄다.“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그는 책상 옆 작은 놋대야로 갔다. 물을 떠서 두 손을 씻었다. 손가락 사이까지. 손톱 밑까지. 마른 천에 닦았다. 그러고 나서 돌아와 표를 받았다.루엔은 그 손을 보았다. 이 세계에서 손 씻는 걸 이렇게 꼼꼼히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여기는 백색탑 교구청이었다. 물은 살갗 구멍을 열어 악한 기운을 들인다고 가르치는 교단.그런데 소매 끝이 젖어 있었다. 오늘만 젖은 게 아니었다. 천이 늘 젖었다 마른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오렐 바스입니다.” 젊은 사제가 말했다. “이 교구에서 계약 서류를 봅니다.”*오렐은 칼브 계약서 사본과 루엔의 표를 나란히 펴 놓았다. 한 줄씩 읽었다. 읽는 게 느렸다. 한 줄을 읽고 나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머릿속 어딘가에 대 보는 것 같았다.한참 뒤에 오렐이 선반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냈다. 교단 법이었다. 가죽 표지가 닳아 반들거렸다.“빌려준 것보다 더 받지 말라.” 오렐이 한 곳을 짚었다. “셋째 권 열두째 장 첫 줄. 칼브 씨는 이 줄을 지켰다고 합니다. 스무 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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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같은 막대, 다른 통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내려갈 때보다 닷새가 더 걸렸다.하르트 성 돌계단은 여전히 서른두 칸이었다. 루엔은 올라가며 셌다. 서른둘. 떠날 때와 같았다.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마르타가 계단 위에서 울었다. 베르타는 국자를 든 채 루엔을 위아래로 훑었다. “말랐네.” 루엔이 몸무게를 말하려 하자 베르타가 국자를 들었다. 루엔은 말하지 않았다.어머니는 옷깃의 방패 문장을 먼저 보았다. 한 해 동안 실이 한 올도 풀리지 않은 걸 보고 웃었다.*그날 저녁 루엔은 아버지 방 벽을 보았다.거기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여덟 살 여름부터 루엔이 적어 온 표였다. 기사단 아침 집합 때 기사마다 언제 닿았는지. 모래 마당 막대 그림자에 그은 금으로 적은 것. 가로는 날짜, 세로는 기사 이름.루엔이 떠난 가을에서 멈췄어야 할 표였다.멈추지 않았다.떠난 날 다음 칸부터 다른 글씨가 이어져 있었다. 크고 삐뚤삐뚤했다. 칸을 벗어난 숫자도 있었다. 어떤 날은 먹이 번졌다. 어떤 줄은 위로 휘어 올라갔다. 종이가 모자라 옆에 한 장을 덧붙였고, 그 옆에 또 한 장을 붙였다.“대충 적었다.”뒤에서 코넬이 말했다. 열일곱 살 형은 문틀을 다 채웠다. 기사 견습 옷을 입고 있었다.“네가 없으니까 누가 늦는지 아무도 안 적더라. 그래서 대충.”루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 앞에 섰다. 첫 칸부터 셌다.가을. 겨울. 봄. 여름.눈 온 날은 칸에 작은 별 표시. 기사가 아파서 못 나온 날은 이름 옆에 가위표. 아버지가 국경에 간 이레 동안은 「아버지 없음」이라고 적고, 그래도 다른 기사들 시각은 다 적혀 있었다.루엔은 끝까지 셌다. 날짜 삼백열한 칸. 기사 여덟.빠진 칸이 없었다.한 칸도.루엔이 돌아보았다. 코넬은 벌써 복도로 나가고 있었다.“형.”“왜.”“한 칸도 안 빠졌습니다.”코넬의 걸음이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충 적었다니까.”“글씨가 대충입니다. 칸은 대충이 아닙니다.”코넬이 뒤통수를 긁었다. 귀가 빨갰다. 루엔이 여섯 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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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방앗간 기둥의 눈금

로센 상인은 약속을 지켰다.다음 장날, 수레에 소나무 통 하나가 실려 왔다. 쇠띠 세 줄. 로센 장터 한가운데 걸려 있던 되였다. 네 살 가을, 세금 날 광장에서 본 그 되와 같은 모양이었다. 조금 더 낡았을 뿐.루엔은 로센 되에 물을 채웠다. 쇠잔으로 한 잔씩 퍼냈다.쉰세 잔. 그리고 잔 바닥에 조금.그 조금을 다시 쟀다. 쇠잔 반의 반.루엔은 셈을 적었다. 로센 되 열이면 쇠 되 열하나 하고 쇠잔 넉 잔 반.여덟 해 전 광장에서 핌이 보리를 잃은 그 「조금」이었다. 쇠잔 넉 잔 반. 이제 이름이 생겼다.“이걸 재려고 여덟 해를 기다렸소?” 상인이 물었다.“기다린 건 되입니다. 제가 기다린 건 아닙니다.”상인은 바꾸는 줄이 붙은 표를 받아 들고 로센으로 돌아갔다.사흘 뒤 루엔은 코넬의 말 뒤에 타고 로센 장터에 갔다. 세어 보기로 한 것이 있었다.로센 장터에서 루엔 글자를 쓰는 사람은 넷이었다. 노르벡 교실에서 배우고 시집간 여자. 그 여자에게 배운 아이 둘. 그리고 하나 더.곡물상 도르크였다. 배가 조금 더 나왔고, 목소리는 여전히 좋았다. 그의 장부는 옛 글자로 적혀 있었다. 다만 줄마다 맨 끝자리 하나만 루엔 글자였다.“끝자리만 이렇게 적으면 틀린 게 바로 보여서.” 도르크가 장부를 덮으며 말했다. 루엔 쪽은 보지 않았다. “배운 건 아니오. 보다 보니 알게 된 거지.”루엔은 수첩의 「한 사람 이상」에 줄을 긋고 적었다. 넷. 그 아래 작게. 도르크 — 끝자리만.*그 주에 토빈이 성으로 올라왔다.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나리. 올봄 물이 방앗간 문턱까지 왔습니다.”가렛이 고개를 들었다. 기사장도 들었다. 기사 여덟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 루엔의 도착 표에서 늘 첫 금 안에 들던 이름.“둑은.”“둑은 안 넘었습니다. 문턱만.” 토빈이 모자를 돌렸다. “그런데 방앗간 문턱이 둑 꼭대기보다 한 뼘밖에 안 낮거든요. 한 뼘만 더 왔으면 둑을 넘었을 겁니다.”강은 노르벡 아래를 지나 남쪽으로 흘렀다.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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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상인이 먼저 따른다

가을 학기 첫날, 클라리사가 기숙사 문 앞에 서 있었다.“아버지가 너 보재.”“언제입니까.”“오늘. 해 지기 전.” 클라리사가 손바닥만 한 장부를 폈다. “아버지 하루는 칸이 꽉 찼어. 네 칸은 해 지기 전 모래시계 한 번. 늦으면 다음 칸 손님이 들어와.”루엔은 그 장부를 보았다. 칸마다 시각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래시계 반 번짜리 칸도 있었다.“저보다 짧은 칸이 있군요.”“그 사람은 소금 값만 물으러 와.”클라리사가 가고 나서 테오가 루엔 책상을 들여다보았다. 쇠잔 옆에 쇠 되가 놓여 있었다. 잔보다 스물네 배쯤 커 보였다. 실은 마흔여덟 배였다.“여름 동안 잔이 새끼를 쳤냐.”“잔 마흔여덟이 되 하나입니다.”“그걸 왜 들고 왔어. 기숙사에서 곡식 팔 거야?”“누가 대 보자고 하면 대 보려고 들고 왔습니다.”“누가 그러는데.”루엔은 창밖을 보았다. 강가 창고 거리 쪽이었다.“방금 한 사람 생겼습니다.”*보움 상단은 강가 창고 거리에 있었다.돌로 지은 긴 건물이었다. 문을 열자 양털 냄새와 소금에 절인 생선 냄새가 한꺼번에 왔다. 루엔은 그 냄새를 알았다. 한 해 전 열엿새 동안 맡은 냄새였다.넓은 방에 셈판이 줄지어 있었다. 스무 개가 넘었다. 판마다 서기가 하나씩 붙어 조약돌을 밀었다. 딸깍, 딸깍. 빗소리 같았다.안쪽 방에서 아달베르트 보움이 일어섰다.몸집이 작았다. 루엔보다 머리 하나 클까 말까. 대신 단단했다. 검은 머리에 흰 줄이 섞였다. 귀 뒤에 산가지 하나가 펜처럼 꽂혀 있었다.“하르트 도련님.” 목소리가 빨랐다. “작년 여름 우리 강배에 짐 무게 종이를 내미신 분이지요. 선장이 그 종이를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배 저울에 안 올리고 삯을 받은 건 처음이라서.”“양털 상단이 보움 상단이었습니까.”“양털도 보움이고 소금도 보움이지요. 앉으십시오. 모래시계를 뒤집었습니다.”책상 위 모래시계가 이미 흐르고 있었다.*아달베르트가 궤짝을 열었다. 쇠 되 셋이 나왔다.“여름에 로센 지점 사람이 노르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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