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깊은 산속, 세상과 단절된 한옥에 사는 여인 ‘명옥’과 그녀가 거둔 청년 ‘독고춘’.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던 그들의 고요한 삶은, 어느 날 톱스타 강지희의 방문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뱃속에 아기 귀신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경악하는 그녀는 아기 귀신을 없애는 대신 사랑으로 보내 주려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방금 아기가 그쪽 보고 아빠라고 한 거 못 들었어요?” “이 아기가 행복하게 스스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 싶어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그래서 말인데, 그쪽이 내 세컨드 매니저로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어쩔수 없이 산에서 내려와 강지희의 매니저를 하게 된 독고춘. 그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표지:AI
View More비가 세차게 내리던 7월의 어느 날.
하얀 형광등이 냉랭하게 빛나는 병원 장례식장 한켠에, 아홉살 짜리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독고춘.
그리고 그가 앉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의 부모가… 죽었다.
정면의 제단 위에는 나란히 놓인 두 장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춘은 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감정이 말라붙은 듯,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불과 하루 전 아침이었다.
아직 눈이 반쯤 감긴 채로, 춘은 현관 앞에서 부모를 배웅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말을 꺼냈다.
“엄마… 아빠…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와.”
부모는 피식 웃었다.
“우리 춘, 아직 잠 덜 깼구나. 얼른 들어가서 좀 더 자렴.”
그저 아이의 잠꼬대로 넘겼다.
독고춘은 이상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검은 연기엔 매우 나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괜히 부모의 출근을 막았다가 혼날까봐 입을 다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부모는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내가… 말렸더라면…”
소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그 순간, 차가운 공기 사이로 파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장의 영정에서 푸른 불꽃 두 개가 피어올랐다.
그 불꽃은 독고춘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소년은 겁먹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두 손으로 불꽃을 감싸 쥐자 따뜻한 감정이 그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그건 분명히… 부모의 마음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춘아.’
‘넌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곁에 있을께.’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아빠...엄마..."
참고 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소년은 울고, 또 울었다.
하얀 방 안이 그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
얼마나 울었을까.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울고 난 뒤, 소년은 기운이 다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렸다.
비에 젖은 바람과 함께,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고왔다.
그녀는 소년이 품에 꼭 끌어안고 있는 두 개의 푸른 불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그들을 보내주지 않겠느냐, 아이야.”
그 순간, 소년의 눈동자에 서늘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빛이 동시에 스쳤다.
여인의 말에 두개의 푸른 불꽃은 이끌리듯 여인의 품에 안겼다.
여인은 두 불꽃과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후, 두 불꽃은 다시 아이의 주위를 맴돌다가 공중에서 팟-하고 사라졌다.
소년은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할뿐 여인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여인은 감았던 눈을 뜨고는 소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래야 너의 부모 마음이 편할게야."
소년은 낯선 여인의 신비로운 목소리에 홀린듯 내민 손을 붙잡았다.
---
깊은 산속,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안개가 내려앉은 그곳에는 오래된 한옥이 있었다.
지붕에는 이끼가 얹혀 있었고, 마당의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그곳에 한 여인과 독고춘이 살고 있었다.
한옥 안의 가구들은 모두 아주 오래 사용한 흔적이 있는 낡은 것들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그러나 그 속에서 사람의 손길은 분명히 느껴졌다.
매일 새벽,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고 밥을 짓는 사람은 독고춘이었다.
“아이야, 오늘은 제법 쌀쌀하구나. 방이 차지 않게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오래된 가족처럼 평범했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어딘가 묘했다.
여인은 늘 한복 차림이었고, 눈빛은 깊고 고요해 어딘가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독고춘은 때때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일까.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명옥'이라는 것 이외에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검은 연기’와 ‘푸른 불꽃’의 존재와 의미를 가르쳐주었고, 독고춘이 그녀의 '후손'이라는 알수 없는 말을 전해 주었다.
독고춘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스물 해.
독고춘은 이제 스물 아홉살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주미는 호텔 로비를 빠져나온 뒤에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겉으로 보기엔 흐트러짐 없는 상류층 여자의 걸음이었다.고개는 곧게 세워져 있었고, 어깨선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하지만 그 모습에선 살아 있는 사람 특유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마치 오래전부터 몸에 밴 습관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처럼.햇살이 비치는 호텔 정문을 지나 바깥 공기 속으로 걸어 나가는 순간에도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눈 밑엔 여전히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고,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는 자꾸만 허공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지희는 선글라스를 코끝까지 슬쩍 끌어내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저 여자, 병원부터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괜히 따라 나온 건가 싶다가도, 저 위태로운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독고춘은 대답 대신 묵묵히 주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주미의 외견에 닿아 있지 않았다.정확히는, 그녀의 어깨와 목덜미를 감싸듯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 머물러 있었다.실오라기처럼 가늘게 흩날리던 아지랑이는 점점 더 짙게 피어 올랐다.그 안엔 사람 하나를 집어삼킬 만큼 무거운 한이 엉겨 붙어 있었다.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주미의 발걸음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신호등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멈췄지만, 이상하게 그녀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붉은 신호등이 선명하게 켜진 채였는데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 채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뒤쫓아가던 지희는 화들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뭐하는 거에요! 빨간불인데!”휙—그 순간, 독고춘의 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차도로 발을 내딛으려던 박주미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읏—!”균형을 잃은 주미는 그대로 독고춘의 품에 안겼다.부우우우웅—!그와 동시에, 눈앞을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거칠게 스쳐 지나갔다.바람이 옷자락을 세게 흔들었고,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놀란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아니, 빨간불인
지희는 선글라스를 손끝으로 슬쩍 내리며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가까이서 보니 여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화장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말끔했지만, 그 아래 숨겨진 피로까지 감추진 못한 얼굴. 지희는 괜히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흠, 저기요~” 그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짙은 다크서클 아래, 날카롭지만 지친 눈동자, 경계심이 먼저 스친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지희는 한 번 숨을 고른 뒤,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맞은편 의자를 슬쩍 가리켰다. “잠깐 앉아도 돼요?” 햇빛 아래 드러난 지희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분명 놀란 기색은 있었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곧바로 피곤과 경계가 뒤섞인 눈빛이 다시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세요.” 지희는 허락이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 옆에는 독고춘이 말없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래서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뭐죠?"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다가오긴 했는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네? 아, 그게 그러니까..." 그쪽 몸에 귀신이 붙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미치고 환장하겠네. 진짜. 지희가 입술을 달싹이던 순간, 여자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와 독고춘 사이를 오갔다. 정확히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과 분위기를 훑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둘이 빨리 헤어지는 게 좋을 거예요.” “네?” 그 말에 지희의 눈썹이 움찔 올라갔다. 박주미는 피곤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안 그러면...우리 오빠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서늘했다. 마치 경고 같기도, 체념 같기도 한 목소리. 지희가 무언가 되묻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말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여자는 테이블 위에 얹은 손을 만지작거리다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박주미예요. 그쪽...
“하, 열받아 죽겠네.”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독고춘을 노려보던 지희가 작게 중얼거렸다.분명 어젯밤.남의 볼에 입술이나 찍어 놓고, 아침이 되자마자 하는 소리가 뭐?"그럴 리가 없지? 하, 참나."생각할수록 얄미웠다.속이 부글부글 끓는 지희와 달리 독고춘은 오늘도 지나치게 평온한 얼굴이었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심지어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태연하게 엘리베이터 층수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뻔뻔한 태도에 지희의 속이 다시 한번 뒤집혔다.“꼬춘씨, 진짜 기억 안 나요? 어젯밤에 술 취해서—”“...그렇다고 해두지.”“하아?”덤덤한 그의 대답에 지희의 눈썹이 홱 치켜 올라갔다.“뭐라구요? 그렇다고 해둬?”독고춘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그 모습이 더 얄미웠다.바로 그때,띵—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춰 섰다.문이 열리고, 한 젊은 여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길게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절제된 화려함이 느껴지는 트위드 재킷과 눈에 익은 명품 백.누가 봐도 상류층 자제라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화려한 차림새였다.지희는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재빨리 주머니 속 선글라스를 꺼내 슬쩍 얼굴 위로 걸쳤다.그녀는 지희를 힐끗 보는가 싶더니, 별다른 관심 없이 조용히 한쪽에 섰다.분명 그녀의 얼굴은 눈길이 갈 만큼 아름다웠다.하지만 눈 밑엔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창백한 안색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마치 오랫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그 순간, 말없이 서 있던 독고춘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여자의 어깨와 목덜미 주변.보통 사람 눈엔 보이지 않을 검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실오라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1층에 가까워질 무렵, 지희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읏...”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낯익은 고통이 스멀스멀 치고 올라왔다.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이 아랫배를 움켜쥐었다.방금 전까지 씩씩대며 독고춘에
30분 후,과실주가 남긴 붉은 열기가 독고춘의 뺨을 따라 천천히 타고 올라갔다.언제나 단단히 잠겨 있던 돌부처의 입꼬리가, 지희의 눈앞에서 서서히 헐겁게 풀리기 시작했다.“...푸, 푸후후.”독고춘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평소의 그 무뚝뚝하고 날 선 기색은 어디 가고, 눈까지 반쯤 감은 채 헤실헤실 웃는 얼굴.처음 보는 그의 무방비한 모습에 지희는 순간 멍하니 멈춰 섰다.‘됐다! 드디어 취했네, 이 곰탱이!’속으로는 저번에 동요 주정으로 자신을 놀려댔던 독고춘에게 완벽하게 한 방 먹였다며 쾌재를 불렀다.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어진 얼굴로 바보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는 독고춘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지희의 심장이 묘하게 간지러워졌다.수트를 입었을 때의 그 치명적인 아우라는 어디 가고, 대책 없이 순해진 얼굴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하, 이 와중에도 귀여우시겠다?’지희가 혼자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삐죽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툭.“...꼬춘씨?”독고춘의 고개가 힘없이 앞으로 꺾이더니, 그대로 테이블 위로 쓰러져 버렸다.완전히 필름이 끊긴 모양이었다.“아우, 진짜! 꼬춘씨, 침대 가서 누워요!”지희는 비틀거리는 독고춘의 거대한 몸을 제 어깨 위로 간신히 걸쳐 멨다.온천과 마사지를 받아 나른해진 몸체에 가뜩이나 무거운 남자의 몸뚱이가 더해지니,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발에 힘 좀 줘 봐요! 와, 나 진짜 허리 부러지겠네!”가까스로 침대 가장자리에 도착한 지희는 독고춘을 매트리스 위로 툭 쓰러뜨렸다.“헉, 헉. 됐다.”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찰나였다.휙—!“어... 앗!”순식간에 시야가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몸이 붕 떴다.독고춘의 큼지막한 두 팔이 지희의 허리를 밧줄처럼 감싸 안은 채, 그대로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지희의 얼굴이 독고춘의 단단한 가슴팍에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밀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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