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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 나는 네 사랑이 필요 없어

떠난 후, 나는 네 사랑이 필요 없어

โดย:  왕자의 작은 주먹จบแล้ว
ภาษา: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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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시 상류층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차갑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유명한 백씨 가문 도련님이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집안은 물론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았다는 사실을. 훗날 그 도련님은 바라던 대로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졌다. 그 여자는 바로 나였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휴대폰으로 갑자기 동영상 하나가 전송되어 왔다. 화면 속에는 한 남녀가 서로 뒤엉킨 채 몸을 섞고 있었다. 백연우의 억눌린 숨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유난히 거칠게 흘러나왔다. [자기야, 너 정말 좋은 냄새 난다.] 여자는 마지못해 백연우를 밀어내는 듯하면서도 연신 교태 섞인 신음을 흘렸다. 나는 황급히 화면을 꺼버렸다. 새까맣게 꺼진 화면에는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이 비쳤다. 나와 백연우는 학창 시절부터 결혼까지, 15년 동안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적인 잉꼬 부부로 살아왔다. 하지만 실제 삶이 어떤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였다. 백연우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변했다는 것을. 백연우는 내가 직접 골라 준 자신의 비서와 사랑에 빠졌다. 내 눈에는 티끌 하나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백연우의 생일날, 내가 그에게 준 선물은 ‘영원히 서로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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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 1

제1화

화면 속 여자가 연신 신음을 흘렸다.

[백연우 진짜 대단해.]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백연우의 억눌린 숨소리는 유난히 거칠었다.

나는 황급히 화면을 꺼버렸다.

새까만 화면에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이 비쳤다.

나와 백연우는 교복에서 웨딩드레스까지, 15년 동안 변함없이 서로 사랑해 온, 모두가 부러워하는 금슬 좋은 잉꼬부부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백연우의 마음이 변한 지 이미 오래였고, 대신 내가 직접 골라준 비서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

백연우는 우리가 나눴던 사랑의 말들을 비서에게 들려주었고, 나는 그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백연우가 나 몰래 비서와 아이까지 낳았을 때도 나는 울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백연우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연우의 생일날, 내가 준비한 선물은 ‘영원히 서로의 삶에서 사라져 준다’라는 이별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켜자, 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여자의 가느다란 신음이 뒤섞여 공간 전체가 뜨거운 기운으로 물들었다.

나는 화면 속에서 땀을 흘리는 백연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것이 내가 15년을 사랑한 남편의 진실이었다.

내 생일에 다른 여자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남편.

그때 휴대폰에서 연달아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모두 그 여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글자만 봐도 노골적으로 나를 도발하는 임서현의 표정이 상상됐다.

[하연지, 놀랍지? 아무리 너를 사랑하는 남자라도 참을 수 없는 법이야.]

[나는 네 외모나 학력에는 못 미치지만, 침대 위에서는 자신 있거든.]

임서현의 메시지는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나는 이미 읽을 마음이 없어서 캡처만 하고 휴대폰을 껐다.

임서현은 내가 직접 백연우를 위해 고른 비서였다.

1년 전, 백연우와 오래 일한 비서가 그만두면서 그는 새 비서를 뽑으려 했다.

인사팀에서 추린 이력서가 백연우의 손을 거쳐 내게 넘어왔고, 그때 그는 나를 바라보며 온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연지야, 인사팀에서 괜찮다고 추린 사람들이야.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골라 줘.”

나는 어이없어 웃었다.

“당신 비서 뽑는 건데 나더러 결정하라고?”

그러자 백연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안 되지. 비서는 나랑 자주 붙어 있을 사람인데, 네가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써?”

백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품에 안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도 안은 것처럼.

결국 백연우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나는 이력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 사람으로 하자. 꽤 능숙해 보여.”

설마 1년 만에 내가 직접 고른 비서가 연적이 될 줄은 몰랐다.

테이블 위의 케이크는 방의 난방 때문에 이미 조금 녹아 있었고, ‘29’라고 적힌 초는 비뚤게 꽂혀 있었다.

이것은 백연우가 나를 버린 첫 번째 생일이었고, 우리 사이의 마지막 생일이기도 했다.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한 가닥 기대가 남아 있었다.

‘혹시 돌아올지도 몰라. 그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 생일을 잊었을 리 없잖아.’

하지만 새벽 3시가 되어도 백연우는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없었고, 집에 오지도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임서현과의 채팅창을 열었다.

가장 최근에 도착한 사진에는 여자가 온몸에 선명한 흔적이 남은 남자의 가슴을 베고 누워 있었다.

[네 남편 진짜 세다.]

밤새 꽤 격렬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게 연락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걸까?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쓰라림을 억눌렀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정성껏 차려놓은 음식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 입도 먹지 않은 케이크까지 함께.

이 모든 것을 끝낸 후,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 대표, 전에 나한테 디자이너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잖아. 생각해 봤어. 프랑스행 항공권 좀 준비해 줘.”

이성준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드디어 마음이 바뀌었구나! 예전에 네가 은퇴한다고 했을 때 내가 제일 반대했던 거 기억하지? 네 재능을 묻어두면 안 된다고! 아무튼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서 다행이야. 항공권은 이미 예약해 뒀어, 앞으로 7일 후야.]

7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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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화면 속 여자가 연신 신음을 흘렸다.[백연우 진짜 대단해.]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백연우의 억눌린 숨소리는 유난히 거칠었다.나는 황급히 화면을 꺼버렸다.새까만 화면에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이 비쳤다.나와 백연우는 교복에서 웨딩드레스까지, 15년 동안 변함없이 서로 사랑해 온, 모두가 부러워하는 금슬 좋은 잉꼬부부였다.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백연우의 마음이 변한 지 이미 오래였고, 대신 내가 직접 골라준 비서를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백연우는 우리가 나눴던 사랑의 말들을 비서에게 들려주었고, 나는 그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백연우가 나 몰래 비서와 아이까지 낳았을 때도 나는 울지도, 따지지도 않았다.백연우는 자신이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을 접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서 백연우의 생일날, 내가 준비한 선물은 ‘영원히 서로의 삶에서 사라져 준다’라는 이별이었다.휴대폰을 다시 켜자, 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여자의 가느다란 신음이 뒤섞여 공간 전체가 뜨거운 기운으로 물들었다.나는 화면 속에서 땀을 흘리는 백연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이것이 내가 15년을 사랑한 남편의 진실이었다.내 생일에 다른 여자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남편.그때 휴대폰에서 연달아 알림음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모두 그 여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글자만 봐도 노골적으로 나를 도발하는 임서현의 표정이 상상됐다.[하연지, 놀랍지? 아무리 너를 사랑하는 남자라도 참을 수 없는 법이야.][나는 네 외모나 학력에는 못 미치지만, 침대 위에서는 자신 있거든.]임서현의 메시지는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나는 이미 읽을 마음이 없어서 캡처만 하고 휴대폰을 껐다.임서현은 내가 직접 백연우를 위해 고른 비서였다.1년 전, 백연우와 오래 일한 비서가 그만두면서 그는 새 비서를 뽑으려 했다.인사팀에서 추린 이력서가 백연우의 손을 거쳐 내게 넘어왔고, 그때 그는 나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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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웃었다.7일 후는 백연우의 생일이었다.동시에 나와 백연우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다음 날 아침,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어렴풋이 눈을 뜨니 백연우가 내 화장대에 흩어진 화장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하룻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백연우의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일어났어? 네가 또 화장품을 어질러놔서 내가 정리했어.”나는 백연우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연우는 항상 이렇게 다정했다.작게는 내 화장품을 정리해 주는 것부터, 크게는 내가 놓친 생활 곳곳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15년 동안 한결같이, 진정으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하지만 바로 그런 남자가 정작 내 생일에 다른 여자와 정을 나누고 있었다.아마도 내 감정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백연우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백연우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눈 가득 애정을 담아 말했다.“어젯밤 네 생일에 집에 못 온 건 너를 위해 반지를 맞추러 갔기 때문이야.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내가 온갖 노력 끝에 찾은 ‘영원의 마음’이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라고!”잠시 멈췄다가 백연우는 다시 말했다.“이걸로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자. 연지야, 나는 영원히 너를 사랑해.”백연우의 말을 듣고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백연우가 건넨 반지를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백연우는 애교스럽게 내 허리를 안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나는 너를 위해 밤새 반지를 만들었어. 나한테 뭔가 상으로 줄 거 없어?”그러면서 백연우는 목소리를 낮추고, 큰 손으로 내 허리를 더듬기 시작했다.나는 표정을 담담하게 유지하며 백연우의 손을 막았다.이렇게 뻔한 변명도, 백연우가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백연우의 말을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어쨌든 15년 동안 백연우는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임서현이 나타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결국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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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제 나와 백연우 사이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회사에 들어서자, 입구의 경비원부터 로비의 프런트, 그리고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까지 나를 보는 순간 모두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이것은 백연우가 특별히 요구한 것이었고, 심지어 기업 규정에까지 넣었다.예전에 내가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는 이유로 백연우의 회사에 갔다가, 직원에게 무시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때 나와 백연우는 막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사랑에 푹 빠져 서로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백연우는 일이 바빠지면 늘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 않았고, 나는 그런 그를 위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매일 점심에 직접 준비한 도시락을 가져다주곤 했다.처음 갔을 때 프런트 직원은 나를 몰랐고 예약도 없었다.프런트 직원은 내 초라한 옷차림을 보고 곧바로 비웃기 시작했다.“또 팔자 고치러 온 사람이네. 네 그 초라한 꼴 좀 봐. 우리 대표가 널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더러워지겠다!”이 모든 것을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백연우가 똑똑히 보았다.백연우는 순간 폭발했다.평소 온화하던 백연우가 나에게 무례하게 말한 프런트 직원을 세게 때렸다.“내 여자를 아무도 함부로 평가할 자격 없어!”그 일로 백연우에게는 ‘악마 대표’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회사 주가도 계속 떨어졌다.하지만 백연우는 이런 것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오직 나만 생각했다.백연우는 모든 일이 내 감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그 일 이후, 백연우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나를 빠짐없이 소개했다.회사 대형 스크린에는 매일 내 사진이 등장하는 시간이 있었다.백연우는 심지어 백성그룹 직원이라면 나를 보는 즉시 먼저 인사하라고 지시했다.백연우와 내가 함께 있을 때도 직원들은 나에게 먼저 인사해야 했다.하지만 바로 그렇게 나를 뼛속까지 사랑했던 남자가 외도했다.회의실 문 앞에서 나는 가볍게 노크했다.백연우는 유리 벽 너머로 온 사람이 나인 것을 보고, 손을 들어 회의를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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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무의식적으로 나는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짓궂은 시선을 보냈다.심지어 임서현과 친한 사람은 대놓고 그녀를 놀리듯 말했다.“서현아, 또 대표님이랑 같이 일하는 거야?”임서현은 그 사람을 향해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백연우는 그런 그녀를 보며 그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사람들의 짓궂은 환호성이 더 커졌다.그래, 모두 알고 있었다.그 사람들은 백연우의 연기에 맞춰주고, 연극에 동참하며, 가짜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었다.나만 마치 광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속아 넘어갔고, 백연우처럼 좋은 남편을 둔 것을 혼자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임서현은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가슴 부분의 풍만한 볼륨이 그대로 드러날 듯했고, 임서현은 업무를 핑계 삼아 백연우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모두가 눈치 있게 시선을 돌리고 각자 할 일을 했다.예전에 이 장면을 봤다면, 나는 분명 백연우의 배신 때문에 히스테릭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평온했다.아마도 여기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게다가 백연우를 이미 내 마음속에서 지운 지 오래였다.오늘 밤이면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아침에 나갈 때 백연우가 나를 안고 부드럽게 웃었다.“오늘이 내 생일인데 왜 아직 선물을 못 뜯게 하는 거야?”나는 백연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지나치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녁 먹을 때 같이 뜯자.”백연우는 활짝 웃었다.백연우는 몰랐다.오후에 내가 떠난다는 것을.오늘 자신의 생일이라 백연우는 모든 일을 미뤄두었다.일주일 전에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내 생일까지 함께 보상해 주려 했다.“어디 가고 싶어? 우리 함께 봉우산에 올라가 볼까?”봉우산은 어린 시절 백연우와 사랑을 맹세했던 곳이었다.우리 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나는 가볍게 대답하고, 목도리를 침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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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우리 중 누구도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지 않았다.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었다.예전에 나와 백연우는 약속한 적이 있었다.같은 눈을 맞을 때마다, 서로에게 한 번씩 고백하기로.하지만 나는 여전히 눈 풍경을 혼자 감상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우리는 결국 함께 늙어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멀리서부터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내 마음속에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솟구쳤다.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자, 커다란 바위가 똑바로 나를 향해 빠르게 굴러떨어지고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쾅!순간 온몸이 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이 덮쳐왔다.“아...”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에 숨을 들이켰다.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연지야!”백연우는 놀란 나머지 목소리까지 갈라졌다.백연우의 눈가는 순식간에 붉어졌고,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괜찮아? 지금 바로 병원에 데려갈게!”나는 놀라서 일그러진 백연우의 얼굴을 보며 비웃듯 웃었다.방금 백연우는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백연우는 충분히 나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낼 시간이 있었다.하지만 백연우는 방금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바위가 굴러오는 소리조차 무시했다.나는 백연우가 미처 화면을 끄지 못한 휴대폰을 흘낏 내려다보았다.채팅창 위의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우리 서현이.’정말 친근하게 부르는구나.백연우는 이미 구조대에게 연락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가 도착할 것이다.내 휴대폰에 갑자기 몇 통의 메시지가 들어왔다.열어보니 임서현이 보낸 것이었다.[연우한테 들었어. 지금 두 사람이 첫사랑 고백한 곳에 다시 갔다며?][오늘이 연우의 생일이지? 지난번 네 생일 때 연우는 나랑 함께 있었어. 이번엔 네가 맞춰봐. 연우가 또 나 때문에 너를 버릴까?]나는 흘낏 보고는 휴대폰을 껐다.백연우가 지금 어떻게 되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내 새로운 삶이 곧 시작될 것이다.거기에는 백연우도, 임서현도, 나를 괴롭히는 어떤 일도 없을 것이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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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나는 곧바로 휴대폰에서 유심을 빼내 꺾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이성준은 이미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이성준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손에 든 백합 다발을 흔들어 보였다.“연지야, 여기!”나는 이성준의 외침을 듣고 미소 지으며 그의 시선을 맞았다.오랜만에 만난 이성준은 예전보다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나는 손을 내밀어 이성준과 인사를 나눴다.이성준은 반갑게 내 짐을 받아 들었다.“우리 마지막으로 본 게 몇 년 만이지?”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지난 세월이 하나둘 떠올랐다.나와 이성준은 원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대학 입시 후 전공이 둘 다 의상 디자인이었다.고등학교 때는 서로 도와주는 좋은 파트너였고, 대학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실력자였다.내 디자인에 담긴 모든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성준은 단번에 이해했고, 그의 디자인 철학 역시 나와 잘 맞았다.우리는 정말 뜻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그때 나와 이성준이 가까이 지내니, 친구들도 우리 둘 사이를 떠보곤 했다.하지만 그때 나는 온통 백연우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성준에 대한 감정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대학 졸업 후 우리는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났다.이성준은 유학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어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었다.나중에는 자신만의 의류 회사도 차렸다.주로 컨템퍼러리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했고, 소비자층도 넓어 수익도 상당했다.이성준은 사업이 자리 잡은 뒤, 내게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우리는 항상 좋은 파트너였다.이성준의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하지만 그때는 이미 백연우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고, 남편은 내가 일 때문에 고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백연우는 자기가 나 하나쯤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나는 그때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이성준의 제안을 거절했다.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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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거의 온 마음을 백연우에게 쏟아부었다.일과 공부를 다 놓은 채, 내 인생은 거기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멈춰 있었으니, 이제는 다시 시작할 때였다.그 식사는 무척 즐거웠다.식사 내내 허가희는 내게 음식을 챙겨줬고, 그녀 덕분에 분위기는 한순간도 식을 줄 몰랐다.우리는 만나자마자 금세 친해졌다.식사를 마친 후, 나는 두 사람을 따라 회사로 가서 정식으로 sy의 주주가 되었다.이성준이 마련해준 사무실은 넓고 밝았고, 바로 옆방은 허가희의 사무실이었다.퇴근 후 우리는 자주 회사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근처 바에서 가볍게 한잔했다.가끔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으면 근처 술집에 가서 실컷 놀기도 했다.하지만 십중팔구 가게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성준에게 붙잡혔다.그럴 때면 허가희는 늘 분통을 터뜨렸다.“연지가 나랑 같이 있는데 뭘 걱정해? 내가 다른 사람이랑 도망이라도 갈까 봐!”이성준은 한 손으로 허가희의 옷깃을 잡고, 다른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연신 톡톡 찔렀다.“거긴 별별 사람이 다 모이는 곳이야. 나 없이 너희 둘이서 다시는 가지 마!”두 사람의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두 사람은 보기만 해도 행복한 것이 확실했다.나와 백연우 사이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이렇게 평온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때, 백연우가 찾아왔다.그때는 내가 프랑스에 온 지 한 달이 지났고, 일도 점차 궤도에 올랐다.나는 평소처럼 허가희와 함께 회사 밖으로 나와 잠시 쉬려다가, 맞은편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마주쳤다.그 사람의 얼굴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그가 갑자기 달려와 나를 꽉 끌어안았다.그 남자의 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웠고, 몸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나를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잃어버렸던 보물을 다시 찾은 사람 같았다.“연지야, 드디어 찾았어.”“내 말 좀 들어봐. 나와 임서현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나도 임서현과 한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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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백연우는 떨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말했다.“나를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우리가 함께한 15년을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버릴 수 있어?”“우리는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그렇게 많은 고비를 넘긴 끝에야 함께 할 수 있었어. 지금 정말 나와 완전히 끝내려는 거야?”“우리가 아이도 갖고, 같이 여행도 가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서로에게 고백하자고 했잖아.”“우리는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우리가 약속한 일도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나를 떠나려는 거야?!”백연우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말했다.10년 동안 나는 백연우가 이렇게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내 기억 속의 백연우는 언제나 온화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사람이나 사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온화하고 점잖았다. 나에게는 더욱 다정했으며,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사랑이 정말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예전에 백연우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나의 백연우에 대한 감정은 이미 다 닳아 없어졌다.나는 절망으로 물든 백연우의 눈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말했다.“우리는 이미 끝났어. 끝났으니 좋게 헤어지자.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마.”“나는 어떤 형태의 변심도 용납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한결같은 사람이야.”“내가 너에게 한결같은 마음이었으니, 당연히 너도 나에게 그래 주길 바랐어. 네가 이전에 나에게 아무리 잘해줬어도, 네가 변심한 건 사실이고, 똑같은 호의를 나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준 거야.”“네가 임서현을 사랑했든 아니든, 네 마음이 흔들린 그 순간 우리는 끝난 거야.”“너는 항상 나를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임서현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야.”내가 한 마디 할 때마다 백연우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마침내 핏기가 싹 가셨다.백연우는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주저앉았고, 눈 속의 빛은 점점 사라졌다.나는 낙심한 백연우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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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우리는 마음껏 술을 마시며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았고, 어느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변에 사람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허가희는 이미 취해서 인사불성이었다.나는 허가희를 보고 조용히 이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준아, 우리 좀 데리러 와. 오늘 우리 둘 다 많이 마셨어.”전화기 너머 이성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이를 악물고 있는 게 느껴졌다.[알았어.]이성준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어서, 나는 룸을 나와 잠시 바람을 쐬었다.그때 한 흑인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그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음탕한 시선으로 내 몸을 훑었다.“어디서 온 예쁜 아가씨야? 처음 보는 얼굴이네.”“이리 와서 한번 뽀뽀해보자. 다른 여자들이랑 맛이 같은지 볼까?”말이 끝나자마자 남자가 내게 다가오려 했다.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발밑에 있는 빈 술병을 집어 들었다.해외에 온 뒤로 나는 호신술을 조금 배웠다.하지만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그 흑인 남자는 마른 그림자에 의해 바닥에 걷어차였다.그 남자는 미친 듯이 상대를 두들겨 팼고, 주먹이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처음에는 살려달라는 소리가 계속 나왔지만, 결국 그 남자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얻어맞았다.하지만 그 위에 올라타서 흑인 남자를 때리는 남자의 손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혹시라도 사람이 죽을까 봐 나는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저기... 방금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 사람은 이미 기절했어요.”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백연우의 초췌한 얼굴이 순간 내 눈에 들어왔다.어쩐지 뒷모습이 익숙하다 싶었다.백연우라는 걸 알고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어쨌든 방금 백연우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나는 백연우에게 손수건을 건넸다.“닦아. 손에 피 묻었어.”백연우는 묵묵히 받아 들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복잡하고 망설이는 듯했다.나는 백연우가 무언가 말하려다 만 것을 알아차리고 먼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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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날 이후 나는 백연우를 다시 보지 못했다.나중에 허가희가 어느 곳을 지나다가 쓰레기통 옆에 웅크리고 있는 백연우를 보았다고 했다.그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그래도 한때 부부였는데, 정말로 백연우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나는 허가희에게 주소를 물었다.며칠 만에 다시 본 백연우는 전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꼿꼿했던 등은 추위 때문인지 잔뜩 웅크려져 있었다.백연우는 얇은 옷차림으로 쓰레기통 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웅크린 채, 계속 입김을 불어내고 있었다.이 모습을 보고 나는 한숨을 쉬며 백연우에게 외투를 건넸다.백연우는 몸을 굳혔고, 외투를 받은 후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한참 후, 백연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내 초라한 모습, 많이 볼품없지? 미안해.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었는데.”나는 백연우를 흘겨보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왜 아직도 귀국 안 해?”백연우는 잠시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권을 잃어버렸고, 신분증이랑 휴대폰도 다 빼앗겼어. 프랑스어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백연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나는 백연우를 호텔에 데려가 방을 잡아주고, 대사관에도 연락했다.잠시 쉬었다가 귀국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처리한 뒤 나는 호텔을 나왔다.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해줬다.앞으로는 아마 평생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백연우가 귀국할 때까지 아직 며칠이 남아 있었다.그동안 백연우는 매일 내 출퇴근을 챙겨주었다.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하지만 나와 백연우는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모든 것이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우리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백연우가 귀국하는 날, 나는 공항에 배웅 가지 않았다.저녁에 퇴근해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탁자 위에서 반지 하나를 보았다.그건 예전에 내 생일에 백연우가 선물했던 ‘영원한 마음’이라는 이름의 반지였다.원래 한 쌍으로 된 반지였고,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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