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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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람이 아이를 잃던 날, 강제헌은 첫사랑의 귀국을 축하하고 있었다. 남편을 위한 3년간의 헌신과 함께 한 시간. 하지만 제헌이 내뱉은 말은 잔인했다. “그냥 집안일 하는 가사도우미였을 뿐이야.” 그날, 이람은 모든 미련을 버리고 이혼을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조이람은 미련 덩어리야. 절대 못 떠나.” “형수님? 늘 그랬던 대로 하루면 돌아오겠죠.” “...” “하루는 무슨, 반나절이면 충분해.” 제헌은 웃으며 확신했다. 하지만 이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잃어버렸던 삶을 되찾기 시작했다. 커리어에 복귀하고, 꿈을 좇고,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 안에 이람의 흔적이 사라져갔다. 그제야 제헌은 깨달았다. 그녀가 진짜로 떠났다는 현실을.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업계 행사장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눈부시게 웃고 있는 이람을 다시 마주했다. 질투, 후회, 분노.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온 순간. “조이람,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그 순간, 한 남자가 이람 앞을 가로막는다. 냉랭한 눈빛, 단호한 목소리. “네 형수 건드리지 마.” 서하준이었다. 처음엔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뒤늦게 사랑하게 됐을 땐, 이미 조이람 곁에 강제헌의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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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강제헌과 결혼한 이후, 조이람은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람은 제헌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런데 제헌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그때, 이람은 병원에 있었다.

의사의 목소리는 무표정하고 차가웠다.

“이번 수술로 손상이 좀 커서 앞으로 임신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뭐라고...?’

이람의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다.

이 아이를 위해 그녀는 3년을 준비해왔고, 겨우 임신 2개월 차였다.

그러나.

오늘 오후, 잠깐 나간 길.

이람은 갑자기 튀어나온 차 한 대에 놀라 넘어진 게 문제였다.

의사가 다시 말을 걸었다.

“조이람 씨, 괜찮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람은 남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떴다.

그리고 왈칵 치솟는 눈물을 억지로 꾹 눌러 담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편에 서 있던 간호사들의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이렇게 나쁜데 남편은 왜 안 와?”

“아유, 말도 마. 아까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면서 남편한테 전화하더라고. 울면서 제발 와달라고... 근데 결국 안 왔대.”

“헐...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게 너무 티 나네. 저러고도 이혼 안 하고 있다니 진짜 용하다.”

“...”

이람은 이미 병원 복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 제헌은 병원에 오는 걸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은 그 순간에도 이렇게 말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 잃은 게 그렇게 큰일이야? 왜 그렇게 오버해? 지금 바쁘니까, 더는 귀찮게 하지 마.]

그 뒤로 이람은 몇 번 더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헌은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사실 이런 식의 냉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지난 3년 동안, 제헌은 이람에게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차갑고 무심하고, 남보다 못한 거리감.

솔직히, 이람은 제헌의 냉대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3년 전, 이람은 우연히 강수철 회장의 생명을 구했다.

강 회장은 이람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제헌과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 덕분에 이람은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수 있었지만, 애초에 제헌은 이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이렇게 간절히 연락한 것도... ‘혹시라도 아이를 위해서 마음이 조금은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가 또 바보같이 헛된 기대를 품었네.’

이람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집으로 돌아가 쉬려고 폰을 꺼내 들었을 때, 알림 하나가 떴다.

고지후에서 온 메시지였다.

지후는 제헌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한 동생이었다.

그가 보낸 건 영상 하나였다.

이람은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눌렀다.

영상 시작, 프레임 가득 붉은 장미가 등장했다.

적어도 천 송이는 되어 보였다. 너무 많아서 화면에 다 담기지도 않았다.

카메라가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제헌이 나타났다.

이 남자의 옆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바로 하유리였다.

이람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더니, 손끝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는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유리 누나, 제헌이 형이 오늘 유리 누나 귀국하는 거 알고 며칠 전부터 환영회 준비했대요! 진짜 정성 100점 만점에 100점!”

“유리야, 이쯤 됐으면 포옹 한 번쯤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제헌이 형한테 고맙다고!”

“포옹은 무슨! 그냥 키스해! 옛날에 했던 거잖아? 그때 찍은 3분짜리 키스 영상, 나 아직도 안 지웠다!”

“...”

유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여러분, 그만해요! 지금은... 내 입장이 좀 애매해서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헌이 먼저 유리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남자의 목소리도, 동작도, 말도 안 되게 다정하고 자연스러웠다.

그 장면에 주변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유리 누나, 그것 봐요! 제헌이 형 하나도 안 달라졌잖아요!”

“키스해! 키스해!”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영상이 뚝 끊겼고, 그저 알림창엔 메시지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형수님, 죄송해요. 잘못 보냈어요.]

영상은 곧 삭제되었고, 지후는 아무 설명 없이 사라졌다. 아마도 이람이 아직 보기 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채팅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녀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그 사람이 말한 중요한 일이었구나.’

자그마치 3년이었다.

이람은 제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돌아온 건... 제헌이 끝끝내 잊지 못했던 첫사랑.

‘그 사람 마음은, 애초에 내 자리가 아니었어.’

이람은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욕심 많은 꿈에서... 이제 그만 깨야지.’

...

집으로 돌아온 이람은 조용히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생활도, 일도 모두 단순했던 삶이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산 적은 별로 없어서 꼭 필요한 옷가지와 서류 몇 장이 전부였다.

26인치 캐리어 하나로 충분했다.

그래서 30분도 안 되어 그녀의 짐 정리는 끝났다.

그다음은, 기다림.

이람은 제헌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현관문이 열렸다.

제헌이 거실을 지나며 조이람과 눈이 마주쳤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이람은 말 없이 그를 기다렸다.

“수술했다면서. 왜 안 자고 있어?”

목소리는 차가웠고, 그 어떤 걱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당신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람은 입을 열자마자 시선을 고정했다.

제헌의 입술.

부드럽게 굽은 그 선이,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었다.

하지만 남자의 입꼬리는 갈라져 있었고, 셔츠 목덜미엔 붉은 립스틱 자국이 번져 있었다.

심지어 목덜미 아래로는, 더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말로 키스까지 했구나.’

‘아니, 아마 그 이상도 했겠지.’

이람의 가슴이 세게 쑤셨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어언 3년.

제헌이 이람에게 손을 댄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강씨 가문 어른들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같이 한 침대에서 잤다.

그는 단 한 번도 먼저 이람에게 키스를 해준 적 없었고,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전희도 없이 시작됐다.

그 과정 내내 이람은 고통스럽기만 했으며, 끝나고 나면 그녀는 조용히 안아달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등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는 차가운 남자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랬던 제헌이 유리에게는 ...달랐다.

결국 제헌의 시선은 이람 옆에 놓인 캐리어를 발견했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지후가 보낸 영상, 다 봤나 보네.”

“응. 다 봤어요.”

가까이 다가온 제헌에게서 술 냄새가 짙게 풍겼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 불쾌할 정도로 짙은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우리 이혼...”

이람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제헌이 먼저 내뱉었다.

목소리는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다 알았으니까, 이혼하자. 처음부터 당신도 알았잖아. 유리가 해외에 나가 있지 않았으면, 나도 당신이랑 결혼할 일 없었다는 거.”

이 정도 말까지 나왔는데, 이람도 더 이상 남편을 붙잡을 이유는 없었다.

“좋아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냥 자고, 내일 서류 하는 게 어때?”

“괜찮아요. 이혼 서류는 이미 다 준비해서 사인해 뒀어요.”

이람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차분히 거실 테이블을 가리켰다.

“거기 있어요.”

...

신혼 첫날밤, 제헌은 이혼 서류를 이람에게 건넸다.

그리고 오늘, 이람은 드디어 그 서류에 사인했다.

이번엔 제헌이 놀랄 차례였다.

제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람이 진심인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당신... 술 마시고 올 거 알았어요. 해장국 끓여놨어요. 주방에 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이람이 입을 열었다.

이것도 습관이었다.

제헌이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이람은 남편의 식습관과 생활을 꼼꼼히 챙겼다.

요리에 소질이라고는 없던 이람이 능숙한 요리 솜씨를 갖추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완성하기까지 몇 시간씩 걸렸고, 이람의 손과 팔에는 칼에 베이고 불에 덴 자국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제헌은 까다로웠고,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맛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비록 표정은 분명히 만족하는 것 같았지만.

제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단 ‘맛있다’라는 한마디만 해도, 이람은 며칠이고 기뻐할 거란 걸.

그래서 그는 이람에게 작은 기쁨마저 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갈게요.”

3년의 부부 생활, 이별을 앞두고 이람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제헌은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오늘 밤은... 그냥 여기 있어.”

“아니요.”

이람은 조용히 캐리어를 끌고 돌아섰다.

말을 안 듣는 이람이, 제헌의 눈에 점점 불편해졌다.

얼굴에 서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문이 닫혔다.

그때 지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집엔 잘 도착했죠? 형수님한테 물어봤어요? 영상 본 것 같아요?]

[미안해요, 형.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근데 뭐, 봤다 해도 괜찮잖아요? 어차피 형이랑 형수님은 맨날 싸우고 화해하고...]

제헌이 좀 이상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너희 형수, 나랑 이혼한대.”

[네? 이혼이요?]

지후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영상 때문이에요? 설마요. 형수님이 형이랑 이혼할 리가 없죠. 진짜 이혼하면요, 나 진짜... 생방으로 똥 먹을게요!]

“내가 하자고 했어.”

제헌이 결국 진실을 밝혔다.

순간, 지후는 말이 없었다.

제헌이 먼저 이혼을 꺼냈다면, 아무 일도 아닌 셈이었다.

이람은 질긴 접착제처럼 절대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형 이혼 얘기한 지 한 달도 안 됐잖아요. 또요? 와, 진짜 형수님 또 돌아오시겠네요.]

지후는 웃으며 말했다.

[전에 우리 반나절 안에 돌아온다고 내기했잖아요. 그때 내가 이겼어요. 이번엔 하루 걸게요. 또 이기면 이번에도 형이 밥 사는 거죠?]

제헌은 굳게 닫힌 현관문을 흘끗 보았다.

그때, 바깥에서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이람은 꽤 단호했다.

하지만 제헌의 차가운 눈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내일 아침이면 돌아올 거야. 굳이 밤을 새워 기다릴 필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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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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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101092
재미있어요. 언능 올려주세요
2025-09-24 05:34: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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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효
재미있네요 빠른 연재 부탁 드립니다
2025-09-21 07:28:00
5
100 챕터
제1화
강제헌과 결혼한 이후, 조이람은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이람은 제헌을 미치도록 사랑했다.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그런데 제헌의 첫사랑이 돌아왔다.그때, 이람은 병원에 있었다.의사의 목소리는 무표정하고 차가웠다.“이번 수술로 손상이 좀 커서 앞으로 임신 가능성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뭐라고...?’이람의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다.이 아이를 위해 그녀는 3년을 준비해왔고, 겨우 임신 2개월 차였다.그러나.오늘 오후, 잠깐 나간 길. 이람은 갑자기 튀어나온 차 한 대에 놀라 넘어진 게 문제였다.의사가 다시 말을 걸었다.“조이람 씨, 괜찮으세요?”“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이람은 남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떴다. 그리고 왈칵 치솟는 눈물을 억지로 꾹 눌러 담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뒤편에 서 있던 간호사들의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상황이 이렇게 나쁜데 남편은 왜 안 와?”“아유, 말도 마. 아까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면서 남편한테 전화하더라고. 울면서 제발 와달라고... 근데 결국 안 왔대.”“헐...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게 너무 티 나네. 저러고도 이혼 안 하고 있다니 진짜 용하다.”“...”이람은 이미 병원 복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하지만 사실, 제헌은 병원에 오는 걸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은 그 순간에도 이렇게 말했다.[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 잃은 게 그렇게 큰일이야? 왜 그렇게 오버해? 지금 바쁘니까, 더는 귀찮게 하지 마.]그 뒤로 이람은 몇 번 더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헌은 한 번도 받지 않았다.사실 이런 식의 냉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지난 3년 동안, 제헌은 이람에게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차갑고 무심하고, 남보다 못한 거리감.솔직히, 이람은 제헌의 냉대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3년 전, 이람은 우연히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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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제헌이었다.언제나 그랬듯, 이람은 잠시 집을 나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그러고는 더 열심히, 더 애처롭게 제헌에게 매달렸다.그간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이번에도 당연히 이람이 전처럼 제헌에게 매달릴 줄 알았다.제헌은 이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서둘러 나간 것이 잃은 아이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아이...’제헌의 눈빛이 차갑게 일그러졌다.이람은 애초에 아이를 가질 자격조차 없는 여자였다. 그 아이가 생긴 것도 그저 우연일 뿐.그러니 없어진 지금이 오히려 다행이었다....이람은 제헌과 이혼하면, 100억의 위자료를 받게 되어 있었다.두 사람의 이혼 서류와 함께 놓여 있는 은행 계좌였다.3년 전, 이람이 그때 바로 사인만 했다면 아무런 고생도 없이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람은 그 3년 동안 끝없는 기대와 환상에 자신을 몰아넣었다.심지어는 몸도, 마음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까지도.‘이쯤에서 그만두자.’인제 와서 후회하고 따지고 분노하는 건 다 소모일 뿐이었다.그런 소모엔 미래가 없고,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그리고 돈은...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낫다.이람은 조용히 은행카드를 챙겨서, 심야 택시에 올라탔다....택시가 멈춘 곳은 ‘더 하이엘’ 아파트 단지.이 도시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급 아파트.한 층에 두 세대뿐인 구조, 대형 평수.그중 한 세대가 이람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이 집은 이람 외삼촌의 소유였고, 이람의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후, 외삼촌은 외국으로 떠나버렸다.그 후 자연스럽게 이 집은 이람에게 맡겨졌다.이람은 이 집을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계획보다 빠르게 뒤집힌다.바로 지금, 이혼한 지금처럼.7동, 펜트하우스 1호.이람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오후에 미리 청소 업체를 불러 깨끗이 정리해 뒀기 때문에, 집은 깨끗했지만 150평 가까운 공간은 지나치게 텅 비어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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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은 정장 차림으로 카페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 모델 같은 큰 키와 단정한 이목구비는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페 안 여기저기서 몰래 제헌을 훔쳐보는 손님들의 눈빛에는 감탄이 그대로 드러났다.제헌 옆에는 깔끔한 인상의 또 다른 남성이 나란히 서 있었다.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남성은 단정한 외모에, 은근한 품위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이람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시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한빈.이람은 종종 IT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보곤 했는데, 거기서 한빈이 AI 데이터 기반 안정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제헌과 한빈 뒤에는 제헌의 비서 허기성이 서류를 한 뭉치 안고 따르고 있었다.KU그룹은 H시에서 손꼽히는 테크 기업이다. 제헌과 한빈이 함께 있는 건 업무상 자리일 가능성이 컸다.‘제발 강제헌과 마주치지만 말자...’이람은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지금 일어나면 오히려 더 눈에 띌 게 뻔했다. 그저 들키지 않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세상일은 늘 기대와는 반대로 흐른다.다음 순간, 제헌의 시선이 정확히 이람을 찾았다.둘의 시선이 마주쳤다.제헌은 이람을 낯선 사람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곧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제헌은 이람의 존재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는 듯했다.기성도 제헌의 시선을 따라 이람을 바라봤지만, 역시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룸은 이쪽입니다. 한 교수님, 대표님, 이쪽으로요.”이람은 조금 안도했다.그런데 그 순간, 제헌과 한빈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한빈이 불쑥 물었다.“강 대표님, 창가에 앉아 계신 분... 아는 사이신가요? 실례일 수도 있지만, 방금 강 대표님이랑 허 비서님 두 분 모두 그분을 보신 것 같아서요. 우연히 눈에 띄었어요.”제헌은 이람이 회사에 나타날 거라 예상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장소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 사실이 제헌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그렇다고 반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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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맞... 맞아요. 사모님한테서 연락은 안 왔고, 제가 전화 드려도... 계속 안 받으세요. 그게... 아마... 저를 차단하신 것 같기도...”탁!제헌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그리고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이순심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내가 착각했네. 사모님과 좀 떨어져 지내면 대표님도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제헌은 평소에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웬만해선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이렇게 불쾌해하는 태도만으로도 주위를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이었다.이순심은 그제야 깨달았다.‘사모님... 대표님한테 이렇게 튕길 게 아니었어...’‘대표님은 강하게 나오는 사람한테 절대 약하지 않거든.’‘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이순심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사모님, 정말 눈치도 없다니까.’...제헌은 사무실에 도착해 평소처럼 정례회의를 마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성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대표님, 택배입니다.”그가 내민 작은 선물 봉투.제헌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상자를 열자, 안에는 심플한 디자인의 실반지 하나.‘지후 말이 맞았네. 결혼반지를 팔아놓고... 또 다른 주얼리 샵을 들렀다더니.’‘이틀 동안 연락 한 통 없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야?’‘이따가 도시락 들고 회사까지 찾아오겠지.’‘기성이 말로는 매번 점심 무렵에 맞춰 오는 패턴이니까.’제헌의 이마가 좁아지며 주름이 생겼다.그는 반지 케이스를 닫고, 무심하게 책상 한쪽으로 밀어놨다.몇 초 뒤, 내선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오늘 와이프 들어오게 하지 마. 출입 절대 금지시켜.”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기성이 당황해 아무 말 못 하고 끊자, 제헌은 반지 케이스를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이런 식의 계산된 접근, 딱 질색인데...’월요일 아침.이람은 SY그룹의 사무실, 자신의 자리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결혼 초반 몇 달간, 이람은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날, 강 회장은 집안 사람들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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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넌 정말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야.”제헌의 말에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남자의 눈은 분명히 유리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진심 어린 감탄, 그런 눈빛이었다.‘이 반응쯤은 당연하지.’유리는 속으로 말했다.KU그룹은 최근 한빈 교수의 연구팀과 협업 중이다.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KU그룹에도 막대한 기술적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유리는 이번 귀국을 단순한 제헌과의 재회가 아니라, 그 기술적 돌파구를 해결할 ‘핵심 인물’이 되기 위해서 준비했다.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이제는 바보처럼 굴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밥 좀 잘하고, 애교 몇 마디 던져서 남자 마음을 얻는 시대는 끝났다.능력 있는 여자가, 더 많은 기회를 갖는 세상.그런 세상에서 유리는, ‘능력으로 인정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이람은 오전 내내 바쁜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점심 전, 잠시 커피 생각이 나 탕비실에 들렀다.동료에게 줄 커피까지 챙기며 바삐 움직이던 그때.핸드폰이 울렸다.발신인은 장수란.KU그룹 대표이사 비서실 비서.이람과 수란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예전에 이람이 제헌의 동선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 전부였다.요즘 이람은 제헌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수란은 그때도 다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잠깐... 일단 받아보자.’망설이다가 통화를 받았다.[사모님... 요즘 괜찮으세요?]조심스러운 목소리.작고, 떨리는 숨결이 느껴졌다.“네. 잘 지내고 있어요.”이람은 수란이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냥 안부를 묻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수란의 다음 말은 예상 밖이었다.[강 대표님이... 방금 여자분 한 분이랑 회사에 오셨어요. 정말... 분위기 장난 아니었고요. 임원들도 전부, 그분을 미래 사모님으로 보는 분위기예요...][사모님은 혹시 알고 계셨을까 해서요. 그래서 조심스럽게라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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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수란은 그런 이람이 늘 걱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람은 좀처럼 하지 않던 설명을 덧붙였다.[나, 강제헌 씨랑 이혼했어요.]수란은 깜짝 놀랐다.“사모님이랑 대표님이 이혼하셨다고요? 사모님은 그렇게 대표님을 사랑하셨잖아요...”[네, 했어요.]이람은 담담했다.수란은 곧 마음을 추스렸다. 이람의 선택을 이해 못 할 이유는 없었다.굳이 이해하려 들 것도 없었다.수란은 제헌이 이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방적인 감정에는 애초에 ‘왜’ 같은 이유가 필요 없었다.“그럼 대표님... 정말 그 하유리 씨랑 결혼하시는 건가요?”말을 꺼내고 나서야 수란은 자신이 너무 무례했다는 걸 깨달았다.“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몰라요.]‘그 사람의 마음은... 내가 3년을 안고 있어도 따뜻해지지 않았는데...’‘지금 와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서로 더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전화를 끊은 뒤, 이람의 머릿속에 유리가 떠올랐다.제헌을 알기 전부터, 이람은 유리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리가 제헌의 첫사랑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였다.유리를 알게 된 계기는 단순하지 않았다.정확히는, 유리는 이람의 이모 심혜영과 관련이 있었다.이람의 어머니 심혜주가 사고를 당한 뒤, 외삼촌 심기정은 해외에 정착했고, 심혜영이 외할아버지가 일군 가업을 이어받았다.그러던 중,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심혜영은 유리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맹렬한 사랑이었다.유리의 어머니는 아이 셋을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났다.그럼에도 심혜영은 단호하게 하씨 집안으로 시집갔다.그때의 하씨 집안은 H시에선 유명하지 않은 작은 기업 하나를 소유한 것이 전부였다.심혜영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하씨 집안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HT그룹이다.몇 년 사이, HT그룹은 H시 재계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대기업이 되었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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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하루가 지나서야 제헌에게서 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이람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핸드폰을 열었다.‘혹시... 기억하고 있을까?’‘기억하기만 해도 돼. 그거면 충분해.’하지만 제헌의 답장은 이랬다.[오늘 저녁 8시쯤 들어갈 거니까 저녁 미리 준비해 둬.]순간, 그녀는 얼음물 한 통을 머리부터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몸은 멀쩡했지만, 심장은 얼어붙어버렸다.‘이런 말, 결혼 3년 내내 수도 없이 들었어.’제헌은 분명히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지시처럼 무미건조했다.무엇보다... 이람이 보낸 메시지는, 애초에 읽지도 않은 것 같았다.‘읽었어도 그냥 무시한 거겠지.’‘이 정도의 무관심... 그 사람답네.’그날 이람은 스스로에게 말했다.‘기대하지 말자. 생일은 그냥 지나가는 365일 중 하루일 뿐이야.’‘괜히 의미 부여하지 말자.’그래서 민서가 오늘 생일을 챙기겠다고 말했을 땐, 이람은 순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랐다.이람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속은 뒤집혀도 겉은 평온했다.결국 겨우 한마디 입 밖으로 꺼냈다.“감동이야.”“감동은 무슨. 결국 자리도 못 잡았는데.”민서는 쏘아붙이듯 말해놓고, 이내 한숨을 쉬었다.“내 잘못이지 뭐. 미리 예약했어야 했는데... 평소엔 손님도 많지 않고 널널하길래 방심했지. 오늘 따라 하필 통째로 대관이래.”그러더니 작은 쇼핑백을 내밀었다.이람이 받으며 물었다.“이게 뭐야?”“생일선물. 일단 받아. 너는 잠깐 길가에서 기다려. 내가 차 끌고 올게. 자리 옮겨서, 더 좋은 데 가서 먹자.”민서는 그 말만 남기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이람은 민서의 당당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쥔 쇼핑백을 내려다보았다.쇼핑백에는 익숙한 주얼리 브랜드 로고가 찍혀 있었다.며칠 전, 결혼반지를 팔고 나온 날 민서와 함께 지나가던 매장.안에 들어 있는 건 정사각형의 작은 박스.아마 팔찌나 목걸이 같은 악세사리겠지.‘그날, 이미 챙길 생각 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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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람은 길가에 서서 민서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제헌 일행과의 거리는 대략 7미터 남짓.어둑해진 하늘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이면, 조금만 시선을 피하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거리였다.하지만, 지후의 한 마디가 모든 시선을 끌어당겼다.“형수님?”이람은 당황스러웠다.정말, 상당히.하지만 이람의 첫 반응은 제헌의 왼손을 보는 것이었다.남자의 약지.그 위엔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남성용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절제된 디자인, 깔끔한 선.제헌의 길고 곧은 손가락을 더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반지였다.그리고 유리의 손가락에도,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커플링이었다.‘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네.’이람은 순간적으로 답답해졌다.그리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그때, 클락션 소리가 두 번 울렸다.빵- 빵-이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민서의 차가 도로 가장자리에 멈춰 있었다.운전석 안의 민서가 턱짓으로 조수석을 가리켰다.이람은 아무 생각 없이 차 문을 열고, 조용히 차에 올랐다.그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지후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제헌 쪽을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형수님 지금... 우리 무시하신 거예요?”이람은... 너무도 단호하게, 너무도 냉정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예전의 이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제헌 주변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잘 지내보려 애쓰던 그녀였지만, 이제 이람의 그 눈빛... 예전과는 달라졌다.차갑고, 겅계선이 명확해 보였다.존재감도 없던 여자가 어느 순간부터 날이 바짝 서 있었다.이람이 달라진 것이다.지후는 그걸 느꼈지만, 뭐가... 왜 그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제헌은 이미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입술은 차갑게 닫혀 있었고, 목소리는 더 차가웠다.“그 사람 얘긴 하지 마.”지후는 유리를 슬쩍 바라봤다.하지만 유리는 단 한 번도 이람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가볍게 턱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신경도 안 쓰는구나.’지후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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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미 이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지후의 눈은 정확했다.운전석에 앉아 있던 건, 분명 여자였다.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이람의 눈과 마음에는 오직 강제헌뿐이었다.그 어떤 남자도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차는 고요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하지만 이람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안 떠올리고 싶어도, 자꾸 비교하게 돼.’‘내 생일은... 언제부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걸까.’조용히 침묵을 삼키던 이람이, 한참을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25일 남았어.”민서는 순간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다. 혹은 소리 내어 원망하거나, 애써 담담한 척 웃을 줄 알았다.방금 전, 눈앞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다른 여자, 그 둘의 반지를 똑똑히 본 이람이었다.그런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숫자.“25일?”“이혼숙려기간. 25일만 지나면, 그 사람과 완전히 끝낼 수 있어.”이람의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오히려 단단해졌다.민서는 그제야 이람의 눈동자 속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결심’을 보았다.강제헌, 스물여덟의 미남.강씨 가문은 H시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 재벌가.KU그룹을 물려받은 이후, 파격적인 사업 구조 개편으로 강제헌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가 재편됐다.H시에 새로운 부자들이 쏟아지는 요즘에도, 강씨 가문은 여전히 도시의 정점에 있었다.강제헌의 외모, 배경, 학벌, 수완.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였다.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으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진 않는다. 이람이 이렇게까지 깊이 빠진 데엔, 더 큰 이유가 있었다.3년 전.어머니가 사고를 당했을 때 이람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졌다.그녀는 정신이 나간 듯 방황하다 실수로 바닷가 방파제에서 떨어졌다.마침 근처에서 요트 동호회 모임에 있던 제헌이 그녀를 발견해, 직접 물에 뛰어들어 구해냈다.제헌이가 아니었다면, 이람은 그날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랐다.제헌은 병원까지 동행했고, 이람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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