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야, 왜 또 맘대로 뛰어다니고 그래? 엄마가 병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원희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엄마, 새를 보고 싶어요. 내 곰 인형을 새에게 주고 싶어요. 그러면 새도 외롭지 않을 거예요. 새가 차가운 땅속에 혼자 있으면 외롭잖아요.”
“그럼 헬륨가스가 새었을 때, 친한 친구를 데리고 먼저 탈출하고 임신한 여자친구는 혼자 남겨두셨다는 건가요?”
“제 여자친구는 스카이다이빙을 할 줄 알아요. 유나는 고소공포증이 있고 스카이다이빙 경험도 없어서 제가 먼저 데리고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한다혜 씨는 전화에서 낙하산이 구멍 났다고 하던데요.”
수녀원을 나오는 길,
대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밀러 가문의 부모님과 누나 루이자, 에일린이
서프라이즈로 아기용품과 가구 카탈로그를 들고 그들을 맞이했다.
"우리 예쁜 세째 딸 테리! 수녀원 인사도 끝났으니 이제 완벽한 우리 식구네!
시월드 매운맛 좀 볼래, 아니면 우리의 무한 사랑 좀 받을래?"
“말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지 말라고. 고작 임신이잖아! 너만 애 낳을 줄 알아?!”
그녀가 내게 진단서를 한 장 내던졌는데 그 위에는 허다은이라는 여자가 임신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허다은은 아마도 지금 이 여자겠지.
다만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이 아이 아빠도 아닌데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차가운 시선, 어둡고 붉게 칠해진 입술, 그리고 내 존재의 모든 섬유가 그 반대를 비명치는데도 나는 여기 있을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는 엉덩이의 곡선.
나는 메인 홀로 이어지는 기념비적인 계단을 내려가며 내면의 주문을 되뇐다. 나는 에바다. 아트 컨설턴트. 뉴요커. 호기심은 많지만 쉽게 겁먹지 않는다. 나는 관찰하러 왔다, 그게 전부다.
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
“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재휘는 손을 뻗어 내 턱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임신한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유난이야! 네가 기어코 병원에 가서 태아 검진 받겠다고 나를 달달 볶은 탓에 청아가 교통 사고당했잖아.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바로 너야!”
짓눌린 턱이 벌겋게 변하더니 이내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었다.
“환자분 남자친구는 겉으론 세심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반전이네요.”
그 말에 이도현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가 깎아 놓은 과일을 먹는 내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의사는 내가 기억을 잃게 된 이유가 사고로 뇌에 출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