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그리고— 아주 짧게 오가는 몇 마디의 대화.
“여기, 이거.”
사치코의 목소리였다. 쿠미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
짧은 반응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사치코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이건 어때?” 이번에는 쿠미였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망설임 없이 물었다.
"그들 악행의 유령이, 살과 뼈가 되어, 그들의 생존 열쇠를 쥐고 있는 모습."
아이들은 잠들어 있다. 웨스트 윙에서 소피가 보호하고 있다. 속삭임과 잔 부딪치는 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녀가 가져온 차는 랩상 수숑, 훈연되고 쌉쌀하다. 재와 결의 맛이 난다. 나는 단숨에 마신다.
"그는?" 질문은 내 경멸이라는 우물에 던지는 조약돌이다.
김수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고 부엌에서는 주시우와 주아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뭐지?”
“토마토.”
“스펠링은 어떻게 쓸까?”
“tomato.”
“색깔은?”
“red.”
“이건 뭐라고 해?”
“noodles.”
그때 신예린이 부엌 쪽으로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주시우가 신예린을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몬에게로 나간다.
· 네 심장 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 입 다물지 않으면 내가 닥치게 만들 거야.
· 오... 겁나네...! 이제 가서 확인해 봐, 5분 지났어.
나는 샤워실로 가서 다섯 개의 테스트기를 각각 확인한다. 모두 양성이다. 젠장, 알렉스가 성공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