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시 사람이라면 서씨 가문의 서지혁이 냉혹하고 단호하며 여지라곤 남겨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4년 전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의 뜨거웠던 하룻밤. 그리고 10개월 후, 갓 태어난 아기를 빌미로 거액을 뜯어간 그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대담한 일을 벌인 걸까? 모두의 궁금증이 하늘을 찔렀다.
나중에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에 그녀는 서씨 가문 본가로 들어갔다.
모두들 복수심에 불탄 서지혁이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무리 아들이 있다 해도 키우지 않았는데 모자간에 정이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서씨 가문 본가의 정원.
한 새침한 여자가 나무 의자에 앉아 옆에서 서류를 보던 남자의 발목을 장난스럽게 톡톡 건드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발목을 덥석 잡은 서지혁.
“또 힘이 생겼어?”
여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창피하게 왜 그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건강을 회복한 아이가 달려왔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말아요.”
내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오빠가 필요하다면 전부 줄 것이다.
이제 오빠는 신장이 필요하다.
“신장을 주면 죽는다고 하던데, 무서워요.”
“엄마, 아빠, 나 죽고 싶지 않아요.”
내가 울며불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지며 큰 화제가 됐다.
이 온라인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엄마는 내 뺨을 때린 후 날 집에 가둬버렸다.
어느 날 남편이 문득 내게 물었다. 와이어 없는 브라가 더 편하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이 남자가 드디어 센스가 생겼나 보다.
하지만 다음날, 비서가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내가 금방 받은 택배를 낚아채며 주소를 잘못 적었다고 핑계를 둘러댔다.
그리고 그날 밤, 유시아가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하나 올렸다.
[남자친구가 사준 선물, 예쁘나요?]
아련한 분위기의 호텔 거울 속 셀카였는데 리본으로 장식된 정교한 속옷 선물 상자가 그녀의 손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 남자는 뒤늦게 센스가 생긴 게 아니라 단지 날 위해 성숙해지려는 의지가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피드에 하트를 누르고 캡처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세트로 사면 20% 할인받을 수 있어. 살림살이 진짜 엉망이네.]
...
“으, 아파!!”
밝은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남자는 나보고 침대에 엎드리라고 하였다.
그는 등 뒤에서 천천히 내 허리를 눌렀다. 베스트 포인트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너무 이상한 느낌을 받아 놀라서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내 허리띠를 세게 잡아당겼다.
딸이 마음씨 좋게 한 할아버지를 부축해 구급차에 태워 보냈다.
하지만 그 구급차가 도착한 곳은 외딴 시골 마을.
간신히 딸을 찾았을 때, 이미 짓밟힌 채 맥이 끊긴 상태였다.
범인은 잡혔지만, 정신이 문제 있다는 이유로 무죄로 풀려났다.
나는 끝내 이성을 잃었고 결국 광기에 휩싸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살인범에게 쫓기던 나는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에게 구원의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내가 끔찍하게 살해당할 때 그는 어린 시절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시신복구사인 그가 한 시체를 맡게 된다.
부서진 두개골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내 얼굴을 보며 그는 미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