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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그녀

존재하지 않는 그녀

다음 날, 점심시간을 틈타 나는 학교의 자료실에 가서 역대 학생들의 사진을 뒤졌다. 1학년 7반 사진에는 어제 본 유령과 꼭 닮은 구진희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단발머리를 한 평범한 외모였지만 어쩐지 겁먹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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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 대여점의 채권자

만물 대여점의 채권자

* 『시나리오: 던전 브레이크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라.』 환각은 아니었다. 탑의 시스템이 구현해낸 평행세계의 지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달리,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지 못해 멸망해가는 지구. "거참, 기분 묘하군. 내 고향이 이런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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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의 칼날

햇빛 속의 칼날

옥에서 오 년간 고초를 겪은 끝에 정시월은 마침내 풀려났다. 옥문이 열리고 그녀가 가장 먼저 마주한 사람은 바로 서정호였다. 그는 검은색 친왕 예복을 걸친 채 윤기가 흐르는 준마 위에 올라타 있었는데, 꼿꼿한 자태는 마치 곧게 뻗은 소나무 같았다. 하지만 정시월의 마음에는 더 이상 한 점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정시월은 시선을 거두고 상대를 완전히 외면한 채,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말 옆을 돌아 그대로 떠나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창을 든 호위병 무리가 양옆에서 갑자기 몰려나와 정시월의 앞을 가로막았다. "죄인 정시월은 성지를 받들라!" 정시월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죄인 정시월은 과거 육황자를 해친 죄가 명백하며, 증거 또한 확실하다! 본래라면 즉시 참형에 처해야 하나, 그 아비인 정택 장군이 과거 세운 전공을 참작하여 폐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옥에 오 년간 가두는 것으로 형을 감하셨다!" "이제 형기가 끝났으나, 한비마마께서 아들을 잃은 슬픔은 오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옥에서 성문까지 십 리에 걸쳐 붉게 달군 숯을 깔았으니 죄인 정시월은 맨발로 그 길을 끝까지 걷는 걸 명한다. 그래야만 육황자의 넋을 위로하고 그 죄가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십 리의 숯불 길을 맨발로 걸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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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환생

잔인한 환생

그의 품에는 유골함 하나가 꽉 안겨 있었는데, 아무리 힘을 주어 빼내려 해도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어깨 위로 붉은 석양이 내려앉았다. 너무나도 평온하고 고요한 최후였다. ... 링거 속 수액이 아주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한가을은 눈을 떠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과거로 다시 돌아왔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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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렌즈

파멸의 렌즈

유진의 손에 들려 있던 과도가 내 오른쪽 눈동자의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유진은 미친 것 같았고 마치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칼을 여러 번 아래로 눌렀다. “너만 아니었으면 난 지금 이미 파란색 눈동자가 되었을 거야!”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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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페르소나

미완성의 페르소나

그런데. 아주 짧게 어제의 장면이 겹쳤다. 말이 끊기지 않던 간격. 이어지지 않던 시선. 그 사이에 있던,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 나는 그걸 그대로 흘려보냈다. 잡지 않았다. 굳이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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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는 세상 참 좋다

당신이 없는 세상 참 좋다

텅 빈 침대 위로, 엎어진 결혼사진 위로, 오래된 핸드폰 위로 창백한 빛이 내려앉았다. 침대 머리맡의 생체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길게 울렸다. 심전도 선은 곧게 뻗은 한 줄로 멈춰 섰다. 더 이상 어떤 변화도 없었다. ... 같은 밤하늘 아래. 외국에 있는 어느 개인 소유 섬에서는 아직 불꽃놀이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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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빛미르

붉빛미르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치 그림 위로 다른 그림을 덮어 씌우듯이 말이오.” 이도가 천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물빛미르께서 이 세계의 시간을 바꿔주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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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피어난 꽃

어둠 속에 피어난 꽃

어릴 적 기억이 생기기 시작한 무렵부터,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언니는 황후가 될 운명을 타고났으니 세상의 모든 귀하고 좋은 것은 마땅히 언니의 몫이어야 한다고. 도성의 사람들 역시 언니보다 명석하지 못하다며 나를 피하고 은근히 멸시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언니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꽃을 피울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궁중 연회가 열리기 전, 어머니는 내게 일부러 칙칙한 초록색 치마를 보내오시며 언니의 기를 죽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언니는 이미 미래의 태자비로 여겨지는 몸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옛날 도사가 우리 가문에 황후가 될 운명을 타고난 여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게 꼭 언니 한 사람뿐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지난 세월의 인내는 그저 때를 기다린 것뿐이다. 모두가 나에게 물러서라고 한다면, 나는 오히려 빼앗을 것이다. 황후의 운명이라고 해서 어찌 꼭 태자비에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중궁전의 주인이 되어 황제의 곁을 지키는 것 역시, 비할 데 없이 고귀한 운명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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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닮은 달

태양을 닮은 달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내 인생의 바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저택 쪽을 바라보았다. 저 문턱을 넘은 순간, 평범했던 내 일상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마치 미지의 거대한 세계로 들어서기 직전, 발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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