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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로맨스 단편 소설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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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번 미뤄진 혼인신고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별일없음
강도진이 혼인신고를 미루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다음에 하자.” 강도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날씨가 좋다는 말을 하듯 태연한 목소리였다. 나는 죽을 한 숟갈 떠먹고 천천히 삼켰다. “알았어.” 강도진은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여 반찬을 집었다. 그러다 다시 나를 힐끗 바라봤다. “화난 거 아니지?” 나는 다시 죽을 한 숟갈 떠먹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화 안 났어.” 결혼식을 올린 지 반년. 혼인신고는 벌써 열일곱 번째 미뤄졌다. 강도진은 익숙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천천히 죽을 떠먹으며 그릇을 비워냈다. 강도진은 더 이상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다 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정리했다. 강도진의 옆을 지나려는 순간, 그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여름아, 다음 주 월요일에는 꼭 할게. 반드시 시간 내볼게.” “어차피 우리 결혼식도 올렸잖아. 며칠 늦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절대 약속 안 어길게.” 나는 고개를 숙여 강도진의 손을 바라봤다가 다시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알았어.” 지난 반년 동안 강도진은 다음 주에 하겠다고 아홉 번이나 말했다. 반드시 하겠다고 열세 번이나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열여섯 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혼인신고는 끝내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약속을 어길 테니까.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별거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돼지빛
이혼 소송 재판이 열리던 날, 재판부는 먼저 우리의 혼인 관계에 대해 물었다. “두 분은 결혼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혼인 관계가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됐다고 보십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결혼한 뒤 3년 내내 저희는 줄곧 따로 살았습니다.” “재판장님, 이런 관계에 아직 부부로서의 애정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사람과 5년을 연애했다. 연애할 때부터 그 사람의 카톡 상단에 고정된 채팅방은 언제나 나와의 대화방이었다. 휴대폰 긴급 연락처에도 내가 등록되어 있었고, 심지어 그 사람이 가입한 생명보험의 보험금 수익자도 나였다. 그래서 나는 정말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그 사람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아프셔.” 그 사람은 모든 걸 뒤로한 채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후 3년 동안, 그 사람은 매일 끼니때마다 내게 밥 사진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진 속에 그의 어머니가 찍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런 그 사람이 안쓰러워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내려가 함께 어머니를 간호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난 당신이 힘들어하는 건 싫어.” 그리고 한 달 전. 나는 우연히 암 투병 일상을 올리는 한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발견했다. 그 여자의 브이로그 속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영상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사람이 있고, 하루 세 끼도 그 사람과 함께. 꼭 맞잡은 두 손 역시 그 사람의 손.] 그럼 나는? 1095일 동안 내 곁에 있었던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속이고 있었다. 재판장은 마지막으로 내 의사를 확인했다. “그래도 이혼하겠다는 의사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나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이혼 판결이 내려진 순간, 판결문을 바라보던 나는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한지성, 이제 너를 놓아줄게.’ 그리고 나 자신도, 이제는 자유롭게 놓아주기로 했다.
사망 후, 남편의 빚을 정산합니다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계명
혼인신고 후 5년, 늘 바빠서 결혼식을 미루기만 했던 소방관 남편이 갑자기 시간을 냈다. 하지만 정작 드레스를 입고 기다리던 결혼식 당일, 남편은 온종일 연락 두절이었다. 의문은 소방서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로 풀렸다. 화면 속에서 여자 후배가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시장에게 ‘소방 영웅’ 표창을 받고 있었다. 단톡방은 칭찬과 부러움으로 도배됐다. “신 팀장님 아내분 진짜 미인이시네요. 우리 남편이 말하던 ‘집안일만 해서 폭 삭은 마누라’랑은 차원이 다른데요?” “맞아요. 당당하고 품위 있는 게, 전형적인 내조의 여왕이네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을 떨며, 내가 진짜 신재형의 아내라고 막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펑! 주방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옥 같은 통증 속에서, 나는 남편에게 구원 요청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되자마자 돌아온 건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또 무슨 행패야? 너한테 결혼식 하자고 괜히 거짓말한 줄 알아? 바로 이런 식으로 매달릴까 봐 그런 거야.” “유림이 아버님은 나 살리려다 돌아가셨어. 그 딸한테 하루쯤 아내 자격으로 상 받게 해주는 게 그리 배가 아파?” 내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전화는 미련 없이 끊겨버렸다.
나만의 ‘미래’를 향해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은설
수능 성적이 발표되던 날, 나는 남자친구와 졸업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KTX 안에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의붓언니, 한여생도 함께였다. 한여생이 창가 쪽을 선호하자 강지후는 망설임 없이 그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번 여행 내내 늘 그랬듯 또다시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미래야, 나 여생이랑 전공 고민 좀 해봐야 하거든? 넌 어차피 가채점 점수 낮게 나왔잖아. 심심하면 옆에서 드라마나 보고 있어.” 기차 안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도저히 끼어들 수 없었다. 이게 바로 강지후가 3년 동안 노래를 부르며 약속했던 졸업 여행의 실체였다. 오전 10시, 성적이 정각에 발표되었다. 한여생은 강지후를 얼싸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대박! 우리 점수면 경국대 전공 전부 프리패스야.” 강지후가 웃으며 답했다. “단톡방 봐봐, 부모님들 다 우리 축하해 주고 계셔.” 나는 뒷자리에 앉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어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생이랑 지후 둘 다 점수 이렇게 잘 나오다니! 정말 가문의 자랑이구나.” 뒤이어 강지후 부모님의 찬사가 이어졌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카톡을 켜보았다. 애초에 추가된 단톡방 따위 없었고, 누구 하나 내 점수를 물어보지 않았다. 뭐, 괜찮았다. 그들은 이미 서로의 ‘여생’이 되기를 택했으니, 나 또한 자신만의 ‘미래’를 찾아 떠날 때였다.
내가 더는 당신을 찾지 않을 때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목화
부태현은 내가 더 이상 사사건건 제게 보고하듯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회사에서 출장을 가겠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망설임 없이 서명했다. 절친이 결혼식에 꼭 연인과 함께 오라고 했지만, 혼자 참석해 넉넉한 축의금만 건넸다. 몸이 아파 입원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조차 혼자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했다. 의사인 부태현은 그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픈 걸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진료 기록 줘 봐. 내가 일정 잡아 줄게.” 나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고마워.” 말이 떨어진 순간, 나도 부태현도 동시에 굳어 버렸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부태현에게 달라붙어 살았다. 데이트할 때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뭘 먹을지. 그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메시지를 보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내가 이제는... 그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벌이 되었다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목화
대학생이던 강호준을, 나는 그저 가볍게 가지고 놀았다. 그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먼저 이별을 고한 건 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성공한 사업가가 된 강호준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집안이 몰락해 모든 것을 잃은 나와 결혼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내가 정말 복도 많다고.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강호준이 밤마다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울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내 모습에 강호준이 먼저 미쳐 갔다. 결국 그는 첫사랑 백유연에게 아이까지 갖게 했다. 그래도 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자, 강호준은 나를 거칠게 벽으로 몰아붙였다. “넌... 대체 나를 사랑하기는 해?”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백유연의 양수가 같은 날 터졌다. 나는 처음으로 강호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를 사랑한다고 인정하며, 제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강호준은 기쁜 얼굴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럴 줄 알았어. 이 거짓말쟁이.”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나를 매정하게 밀쳐냈다. 그리고 백유연을 품에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조금 있다가 병원에 보내 줄게.” 그리고 차갑게 덧붙였다. “아이 낳는 고통 정도는 견뎌. 나한테 거짓말한 벌이니까.”
99번의 용서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청순양고딩
내 아내는 한때 나를 얼마나 사랑했을까? 그때 나와 결혼하기 위해 프러포즈만 무려 99번을 했다. 100번째에 이르자, 나는 마침내 그 끈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결혼식 당일, 나는 아내에게 화해 쿠폰 99장을 건넸다. 이 화해 쿠폰이 다 떨어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혼한 지 5년, 아내는 사랑하는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갈 때마다 화해 쿠폰을 한 장씩 써 버렸다. 97 번째 화해권을 쓰게 되었을 때, 아내는 문득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더 이상 울고불고하지도 않았고 곁에 남아 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다만 아내가 골든 리트리버 같은 연하 비서에게 홀려서 이성을 잃었을 때 조용히 물었었다. “당신 안 돌아올 거면 화해 쿠폰 한 장 쓸래?” 아내는 잠시 멍하더니, 드물게 마음이 약해졌는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어차피 이제 겨우 60몇 장 썼으니까, 네 생각에 내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쓸게.”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내가 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게 자신이 쓴 97번째 화해 쿠폰이고, 우리의 화해 쿠폰은 이제 마지막 2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내는 몰랐을 것이었다...
그들을 떠난 뒤, 내 삶이 시작됐다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구름잠
결혼식 당일, 사회자가 결혼반지 교환 순서를 알리자, 맞은편에 서 있던 이현민이 불쑥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지수랑 만나고 있어.” 충격으로 굳어 버린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데도 이현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 듯 목소리마저 태연했다. “네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러 갔던 날, 지수랑 바로 옆 탈의실에서 했어. 지수가 참지 못하고 몇 번 신음을 흘렸는데, 넌 몸이 안 좋은 줄 알고 한참이나 걱정했지. 그러고 나서 네 옆에 섰을 때는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나는 굳어 버린 몸을 억지로 돌려 하객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절친 한지수를 바라보았다. 한지수는 손에 든 부케를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한지수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드레스 자락을 정리해 주고는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지어 조금 전, 네가 메이크업을 받을 때도 지수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 있었어.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내 등에 상처가 날 만큼 손톱을 세웠더라고.” 모든 말을 마친 이현민은 손에 들린 결혼반지를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강서린, 난 전부 말했어. 그래도 이 결혼을 이어 갈지는 네 선택에 맡길게.”
그녀의 도발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꽃냥이
아내 송지현과 결혼한 지 8년. 그녀가 집으로 데려온 남자는 어느덧 아흔아홉 명에 달했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백 번째의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가 송지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나, 이 사람이 그 쓸모없다는 남편이에요?” 송지현은 의자 등받이에 툭 기댄 채 나른하게 한마디 던졌다. “그래.”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볼을 톡톡 치더니 비웃듯 말했다. “오늘 밤 똑똑히 들어봐요. 건강한 남자가 침대에서 여자를 제대로 만족시키는 법이 뭔지!” 그날 밤, 나는 거실에 갇힌 채 밤새도록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들을 견뎌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송지현은 평소처럼 당연하다는 듯 내게 아침을 만들어 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녀는 잊은 모양이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그저 계약 결혼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은 그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고작 사흘을 남겨둔 날이었다.
내가 떠난 후, 망한 그녀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귀요미
회사 자금 조달에 성공하면 대표이사인 와이프가 사람들 앞에서 나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발표 당일, 갓 입사한 그녀의 후배가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대표님, 우리 둘 사이를 이렇게 빨리 외부에 발표하는 건가요? 대체 저를 얼마나 아끼시길래...” 그 말에도 그녀는 반박은커녕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후배를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배치해 스펙을 쌓게 해주었다. 순간, 현장의 모든 직원들이 지붕이 떠나갈 듯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 해 함께 일해온 동료가 말없이 서 있는 나를 보고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귀띔해 주었다. “한정훈, 너 눈치 빠르잖아. 분위기 좀 띄워 봐.” 하지만 나는 나서지 않았다. 대신 프로젝트 책임자 명패를 후배 쪽으로 밀며 너그럽게 말했다. “프로젝트에 참여만 하는 건 네 능력을 너무 낮추는 거, 아니야? 내 프로젝트 책임자 자리도 너희 공식 발표 선물로 줄게!”
아빠의 침대에 바쳐진 딸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지난이
약혼자와 절친이 먹인 약 기운에 취해 연성 최고 재벌의 초호화 스위트룸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면서 나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네.” 약혼자는 내가 죽을 때가 되어 헛소리를 한다 여겼는지, 내 턱을 사정없이 쥐어틀었다. “이 년아, 우리 회사의 생사가 이번 프로젝트에 걸려 있어!” “하 회장한테 수년간 품어온 첫사랑이 있다는데, 네 얼굴이 딱 그 여자랑 닮았거든. 그러니까 고분고분 그분 기분 잘 맞춰드려. 프로젝트만 성사되면 너한테도 돈 몇 푼 던져줄 테니까!” 절친도 옆에서 입을 가리며 낄낄거렸다. “맞아. 하 회장님을 모시는 건 네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받은 복이니까 주제도 모르고 튕기지 마.” 약효가 퍼지자 나는 금빛 문 너머로 사정없이 밀쳐졌다. 다만 가죽 소파에 기댄 채 차가운 냉소를 머금고 있는 나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대역을 장난감처럼 다룬다는 그 하 회장이, 사실은 내 친아빠였으니까. 오늘, 그들은 제 손으로 나를 아빠 품에 안겨 준 셈이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진짜 산지옥이 무엇인지를.
8번째 약속도 너는 없었다 - 로맨스 소설 & 이야기
밀알
심우열은 원칙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규칙을 어기는 법도 없었으며, 한 번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혼인신고만큼은 방연서를 무려 8번이나 바람을 맞혔다. 첫 번째는 8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던 후배 이현지가 귀국하는 날이라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두 번째는 이현지가 요리를 하다 손가락을 살짝 데었다고 하자, 심우열은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도중에 되돌아가서 그녀에게 약을 발라줬다. 세 번째는 이현지의 아들이 아파서, 급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 이번이 벌써 8번째였다. 이번에도 심우열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우열은 급하게 전화만 한 통 걸어왔다. [급한 일이 생겼어. 조금 늦을 것 같아.] 방연서는 눈앞에서 두 사람의 번호를 차례로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창구 직원이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가씨, 남자친구분은 또 안 오셨어요? 저희 곧 퇴근해야 하는데...” 방연서가 다시 전화를 걸려던 순간, 심우열의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오늘 혼인신고는 못 할 것 같아. 다음에 하자.] 그 문자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한 느낌이 차올랐다. 방연서가 휴대폰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이현지의 SNS 게시물에 시선이 멈췄다. 사진 속 이현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그녀의 아들을 안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심우열이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 [현준이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오늘 하루 함께해준 선배님, 감사해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목구멍에 납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결국 심우열이 말한 급한 일이란, 이현지의 아들을 놀이공원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이 아팠고, 서러움과 분노에 온몸이 떨렸다. 심우열에게 당장 전화해서 따지려던 그때, 댓글에서 남자의 친구가 남긴 장난스러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이 지나도 우열이는 여전히 후배를 각별히 아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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